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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현기 Aug 04. 2023

엄마는 늘 바쁘다

  

  이른 새벽부터 분주한 슬리퍼 끄는 소리

  푹 꺼진 그림자 하나 뒤란으로 살금살금 다니는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반찬 몇 가지 얹어서는 슬며시 뒷방 속으로 숨어드는

  연암로 새로 깐 보도블록 경계석 가장자리에

  엉덩이 하나 얹을 만큼의 나무 의자 하나

  가을이 걸터앉았다


  마르지 않던 엄마의 속곳 주머니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손자 놈들 한 놈 두 놈 불러오더만

  어느새 텅 비어버린 쌈짓돈 주머니


  금강철물 뒷골목 아무도 따지 않는 아름드리 감나무

  골목길 지저분해진다고 동네에서 허리 잘라 버렸단다

  훤한 가을하늘 보니 속은 시원하다만, 왠지

  메마른 잔디밭처럼 바닥을 훤히 드러낸

  엄마 머리를 닮았다


  호돌네 그 할마시 복도 많어

  부산 아들 올라온다고 아침나절 나보고 자랑하더만

  밥숟갈 들다 앉아서 돌아갔어


  서당골 채화당 배롱나무에 엄마의 가을이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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