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경미 Apr 16. 2024

5부 다시 시작한 돌봄 (이번엔 잘 할 수 있을까?)

5-2 느그 어머니가 쓰러졌다잉!

 아버님은 시간이 갈수록 지쳐갔다. 의부증뿐만 아니라 집안 살림도 엉망이 되어갔기에 도우미가 절실히 필요했다. 부랴부랴 어머니의 노인 장기 요양 등급 신청을 하게 되었다. 사실 어머니가 치매로 들어선 시점이 훨씬 빨랐는데, 당시에는 그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고, 친정 엄마 요양 등급을 받으면서야 비로소 어머니도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어머니의 치매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진행되었기에 등급은 쉽게 나왔다. 엄마처럼 5등급 인정을 받으며 방문요양 보호사가 집으로 와서 하루에 3시간씩 돌봐주도록 했다. 나는 늘 요양보호사와 전화로 소통했고,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어머니가 어느 상태인지를 확인했다. 왕복 10시간 이상의 거리에 본가가 있으므로 자주 방문하지는 못하고 매달 2박 3일의 일정으로 부모님을 정기적으로 뵈러 다녔다. 그럴 때마다 요양보호사분께 선물 세례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식들이 모두 타지에 나가 있으니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그분께 부탁하고 기대는 방법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엄마 때와는 다르게 이번엔 혜택을 받는 치매환자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 아버님이 복병이었다. 아버님은 여러 가지 불만사항으로 요양보호사를 계속해서 바꿔달라 요청하셨다. 이유는 다양했다. “어머니 옷만 다려주고 내 옷은 다려주지도 않는다”, “버릇이 없다”, “옷을 방정맞게 입고 다닌다” 등등.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문가인 보호사 선생님을 파출부쯤으로 생각하시고 요구사항이 많았고 함부로 대했다. 그 좁은 동네에서 더 이상 아버지의 요구를 감당할 수 있는 요양보호사가 없게 되었다. 그러니 아버님 본인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는 3시간 거리에 사는 딸이 수시로 반찬을 해다 나르고 부모님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장사를 하고 있는 시누이도 늘 시간에 쫒겨 잠시 들렀다 갈 뿐이었으므로 점점 부모님에 대한 걱정은 늘어만 갔다.     


“아야! 느그 어머니가 쓰러져 이상하다잉?”   

  

아버님의 다급한 목소리다. 무슨 일만 있으면 아버님은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우리는 너무 놀라 단숨에 5시간여 거리를 운전하여 시댁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를 보면서 “내가 누구요? 알아보겠어요?”라는 질문에 “딸!”이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눈동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했다. 눈은 초점이 없고 몸은 축 처져있었다. 일단 병원은 다녀오셨다고 하지만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다시 5시간을 달려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그 당시는 다음날 수업도 있었고 돌봐드려야 할 엄마도 있었기 때문에 당일에 돌아와야만 했다. 잠깐이긴 했지만 졸지에 치매 환자 두 분을 동시에 모시게 되었던 것이다. 

    

10여 일 동안 보양식으로 기운을 차리도록 돌보며 어머니의 상태를 지켜봐야 했다. 아들 중 한 명이 의사여서 어머니는 수년 전부터 뇌 영양제를 복용하고 있었고, 딸이 만들어다 주는 반찬으로 아버님과 두 분이 일상생활을 어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이렇게 갑자기 일어나지도 못하고 우리를 몰라보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의 어머니 상태로 봐서는 다시 기력을 되찾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몇 군데 어머니를 맡길만한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수소문하다 보니 다행히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요양병원에 지인이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분과 연락이 되어 사정을 설명하고 병원비까지 협상하여 입원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았다.     


우리의 보살핌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불행 중 다행으로 어머니는 하루하루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뭐야 뭐야, 어머니 !”   

   

부엌에서 아침 식사 설거지를 하던 나는 어머니의 모습에 너무도 놀라 거실바닥에 손에 묻은 비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에게 돌진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어머니 손에 있던 약을 낚아챘다. 조금만 늦게 발견했다면 어머니는 약을 입 안에 다 털어 넣고 삼키고 말았을 게 분명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보니 어머니는 약상자를 꺼내 탁자에 진열해 놓고 있었다.     


“어머니! 약 아까 내가 챙겨줘서 먹었잖아~”

“얘가 왜 그런다냐? 약을 못먹게 채가면 어떻게?” 눈썹을 치겨뜨고 못마땅한 모습이다.

“아냐 아냐, 먹었어.”

“이리줘~ 약 안 먹었다니까!” 이제는 탁자에 있는 약들을 모조리 움켜잡을 태세다.   

  

약을 가지고 한참을 실랑이해야 했다. 아, 이제 알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약이 보이면 무조건 먹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입에 털어 넣는다는 것을. 어머니가 쓰러진 이유는 여러 회 분의 약을 한 번에 복용하셨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기억이 없으니 이런 사고가 터질 수밖에. 우리 집에 와서 점점 좋아지는 걸 보니 그 이유가 확실해졌다. 그날 이후로 약은 어머니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두어야 했고 요양병원행은 없던 일이 되었다. 2주 정도 지나니 점점 기운도 차리고 좋아져서 다시 고향의 아버님 곁으로 보내드려도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친정엄마의 위세척 사건이 있었음을 망각하고 있었다. 왜 그 사건을 미리 아버님께 말해드리지 않았을까? 치매 환자가 있는 가족들은 꼭 알아야 한다. 환자의 약 관리는 주 간병인이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을! 치매 환자가 잘 알아서 챙겨 먹고 있을지라도 어느 순간 뇌가 오작동하여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제5부 다시 시작된 돌봄(이번엔 잘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