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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경계와 최고악最高恶

모디르프의 편지 #8

by 빙산HZ

이번엔 조금 더 옛날 이야기를 해주지.


이 세상의 시작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설명가능하다.

선과 악에 대해서는 ‘자유의지’라는 네 글자로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구분에 대해서는 어떤가?

천사와 악마라는 이름으로 나눠진 구분은 사실 적절하지 않다는 걸 알려주지.

천사라는 단어 자체의 ἄγγελος[앙겔로스]는 원래 ‘존재’을 뜻하는 게 아니라 역할의 의미를 갖는다. 무언가를 전하는 ‘메신저messenger’라는 뜻이지.

태초의 모든 것을 만든 ‘무엇이든 가능한 첫 존재’가 선한 존재와 악한 존재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우리들은 우선 선한 존재가 악한 존재를 만들 수 있는 가라는 질문 대신, ‘악한 존재’와 선한 존재가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단순한 세계관에 물음표를 심어주고 싶다.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를 만들면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기 때문에 굳이 선한 존재와 악한 존재를 만들 필요가 없지 않는가?


2. 그럼 선과 악의 구분은 어떻게 하는 지 궁금하겠지?


‘착하다’ 와 ‘나쁘다’라는 단어의 기준이 모호해진 요즘 세상에서 너희들은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 지 궁금하군.


나와 나의 가족에게 좋은 것을 선이라고 ‘느끼는’ 이들이 있겠지만, 그걸 사회라는 기준에서 보면 ‘공정’이라는 개념에서 어긋나는 상황들이 생길 수 밖에 없지. 그걸 국가의 개념으로 확장하면 더더욱 복잡해지지 않는가?


A라는 국가에게 유익한 것이 B라는 국가에게 불리한 것이 되는 상황에서도 선과 악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히틀러의 주도하에 일어난 대학살이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않는가? 그건 인간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절대 선’에 대한 기준이 작동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단순히 ‘죽이는 것’이 나쁘다고 하기엔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살인을 저지르는 이들이 있고, 생태계 속에 살아가는 존재는 대부분 다른 생명을 ‘먹고’ 생존해 나가고 있지.


(고기를 먹는 게 악이라 말하고, 채식과 곡식만 먹는 건 선이라고 말하기엔 그 잣대도 애매하단 말이지. 그런 동물과 식물을 구분하고, 식물 속의 박테리아는 먹어도 생물로 구분하는 자의적 기준은 어느 시점엔 설득력을 잃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인간을 죽이는 게 절대악이라고 기준을 삼으면 자신의 가족들을 죽이려하는 강도를 죽이는 것 역시 악이 되고, 수많은 영아와 아동들을 인신매매하는 악당을 죽이는 것 역시 악이 되니 무언가 모순을 느끼지.



즉 선과 악의 구분은 인간이 어떤 주관적인 잣대를 통해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 객관적인 잣대가 필요한 게 아니냐고 묻고 싶겠지. 하지만 인간이 인간인 이상 ‘주관’이 아닌 ‘객관’의 입장이 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결국 비-인간적 존재가 심판의 역할을 감당해야 ‘객관적 기준’을 논할 수 있게 된다.


그게 ‘절대적 기준’이고 그 절대적 기준을 알아야 ‘선’과 ‘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정원의 주인’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선’과 ‘악’이 얕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절대적 기준이 없는 인류에게는 ‘호불호’나 ‘유익과 불이익’ 이상의 잣대를 초월할 수 없기 때문이지.


즉, 어떤 기준을 정한다는 것이 바로 ‘선과 악’의 기준이고, 그건 이 세상에 ‘이미 정해져 있는 규칙’, 또는 ‘약속’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악이라는 단어 대신 ‘죄’로 바꿔보면 더 이해가 쉬울 지 모르겠군.

‘죄’를 논하려면 어떤 법을 적용하는 지에 따라 달라지지.


인간의 선악 여부를 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법이라고 하면 그 법을 정하는 권한이 바로 정원의 주인에게 귀속된 고유의 권한이지.


그렇다면 그런 세상 속에서 가장 최고의 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결국 이 세상의 법칙을 재정의 하려는 것이다.


정원의 주인이 정한 세상의 기준을 너희들 마음대로 정하는 거지.


어차피 과학의 법칙은 너희들이 발견할 뿐이다.

너희들이 바꿀 수 없어.

하지만 사회과학이란 이름의 학문에서 선과 악의 정의를, 남과 여의 정의를, 결혼의 정의를 바꿔가며 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지.


그렇다.

정원의 주인에게 너희들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는 ‘재정의’이다.

그게 바로 너희들이 완벽한 정원에서 선택한 것이지.

스스로 선과 악이 무엇인지 판별하겠다고 선택한 너희들은 지금도 같은 길을 걷고 있지.



무언가를 능숙하게 잘하는 존재를 ‘신’으로 부른다거나,

자궁에서 자라나고 있는 태아를 ‘생명’이 아니라 ‘기관’으로 재정의 하려하거나,

생물학적 정보를 무시한 채 ‘기분과 느낌’으로 성별을 재정의 하려한다거나 말이지.


너희들이 그렇게 할 때, 정원의 주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물리적 법칙을 어길 때는 별도의 처벌이 없어도 물리적 법칙 자체가 너희를 심판한다.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며 스스로 날 수 있는 존재라고 정의를 한다고 물리적 신체는 결국 정원의 주인이 정한 임계치를 초월하면 부숴지고 말지.


사회 속, 관계 속의 법칙도 마찬가지다. 서로 증오하고 거짓으로 가득찬 사회는 스스로 망가지기도 한다. 욕심이 가득찬 세상이 살기 어려워지는 것처럼.


처벌이 오지 않아도 자멸하게 되는 시스템이 내재 되어있지.


너희들 스스로 정원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

그게 바로 너희들의 '재정의'가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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