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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15. 2023

3인칭 칭찬 화법



3인칭 칭찬 화법





3인칭 화법




_ 엄마는 자주 3인칭 화법을 썼어요. 주로 제게 칭할 일이 있을 때요. 예를 들면 제가 장학금을 탔을 때 "장하다, 내 딸."이 아니라 "엄마 친구가 너 대단하다더라."라던가, "이모가 너 예쁘다더라."라는 식으로요. 엄마한테는 그게 최고의 칭찬이에요. 엄마의 면을 세워줘서 고맙다는, 그래서 기분이 좋다는 거요. 그 이상의 칭찬은 받아본 적이 없어요. 엄마는 칭찬을 하는 방법, 사랑을 전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말투나 화법은 살아온 환경을 대변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그런 말은 아주 드문 일이니 거지 같은 인생에 희망을 줄 속담으로 까지 만들어졌을 거다. 실상은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우리는 절대로 특이점 없이, 예를 들면 큰 충격을 받았거나, 자신도 모르는 부자 할아버지를 만난다거나 그런,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일들 없이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고,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거듭날 수 없다. 그러니 대를 이어 무뚝뚝한 모계 혈통처럼 사랑에 인색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건 대대로 물려받지 말아야 할 유전 같다. 칭찬에 인색한 유전자가 대대로 이어지는 거다. 마치 사람의 꼬리뼈가 원래 있었지만 퇴화된 것처럼. 칭찬받을 일이 없었던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 그리고 어쩌면 내 딸로 이어 무뚝뚝한 모계 혈통일 거다.



 하지만 엄마는 화가 날 땐 3인칭 화법을 쓰지 않았다. 화가 날 때 3인칭 화법을 쓰는 것도 별로일 것 같다. 화가 난 학부모가 "애 아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라고 하는 것처럼 우습기도 할 테니. 엄마와는 화가 날 땐 대화가 필요치 않았다. 그저 기분이 풀리게 욕 몇 마디만 들으면 됐다. 엄마의 언어는 아주 걸걸했다. 하지만 딸들이 결혼을 하고 난 뒤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서는 사위의 눈치가 보였는지 엄마의 입에서 욕은 점차 사라졌다. 엄마는 딸과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는 적절한 화법을 선택한 거다. 어린 시절엔 딸이 기어올라 용돈을 올려달라거나, 무엇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을 정도로만. 또 나이가 든 딸에게는 엄마를 안 보고 살겠다 선언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는 알고 보면 아주 계획적인 사람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상처인지




 요 근래 엄마와 아버지 또 언니는 안정되어 보인다. 아니 언니는 빼고. 언니는 예전의 불안함에서도 안정적인 사람이었으니. 그러니 언니의 속엔 몇 명의 부처님이 있을지, 몇 명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오로지 나뿐이다. 아버지는 엄마의 정착으로 안정을 찾았고, 엄마는 가족 걱정뿐인 착한 할머니가 되었고, 언니는 원래 착했고, 나혼자서 여전히 이상한 사람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싫다. 부아가 치민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요 근래에 알게 된 지인들은 늘 같은 동네에 있는 친근해 보이는 부모님을 부러워하기도 한다는 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천하에 불효녀가 된다. 이유도 없이 아직도 사춘기 소녀 같은 불만을 가진 철없는 소녀가 된다.



 언니는 아들의 사망 후, 사는 내내 불행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죽어서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대신 지금의 삶을 끝까지 살겠노라고. 어쩌면 그게 자신을 괴롭힌 자들에게 최고의 복수가 될거다. 아무도 언니를 불행하게 할 수 없다. 나도 누군가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게 살아갈 거다. 나는 이제 내 맘대로 살거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불행해져도 그건 그의 몫이고, 스스로 견뎌내야 한다. 엄마가 과거에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 혼자서 어두운 골목길을 걸었던 것처럼.



 이 글이 나를 대변하려는, 아니 변명하려는 의도의 글이 되지 않기를 바다. 나는 그저 아직도 나를 상처 내고 있는 내 안의 칼날이나 작은 유리조각을 빼내는 중이다. 때론 내 살과 엉겨 붙어 이미 내가 되어버린 것들. 어디서부터가 상처인지 모를 것들을 걷어내고 있는 거다. 그러니 아주 조심스럽게 뻣뻣했던 마음을 말랑하게 바꿔야 한다. 단단한 소나무가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되어야 한다. 엄마의 친구에게 대단한 사람이 되거나, 이모에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어도 좋다. 그게 엄마의 자랑거리가 된다면. 우리 가족은 앞으로도 1인칭 시점도 전지적 작가시점도 아닌 3인칭 시점에 머무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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