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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19. 2023

삶은 최악의 선택을 반복하는 일이다.



삶은 최악의 선택을 반복하는 일이다





작은 퍼즐 조각




_ 나를 갈기갈기 조각내서 처음부터 다시 조립하고 싶어요. 현생이 아닌 내가 처음 시작된 그곳으로 가서 나를 아예 없애고 싶어요. 처음엔 가족들이 미웠는데 이제는 제가 미워요. 마 저는 전생에 큰 죄를 지은 것 같아요. 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퍼즐은 여러 개의 잘게 잘린 조각들을 서로 맞추는 과정이다. 알맞은 위치는 오로지 한 군데뿐이다. 즐은 미 만들어질 때부터 각자의 위치가 정해져 있다. 만약 비슷한 다른 조각에 숨는다 해도 결국 들통이 날 거다. 



 퍼즐의 위치를 찾으려면 바로 옆 퍼즐이 가장 중요하다. 퍼즐 판에서 하나의 퍼즐의 조각의 알맞은 위치를 알게 된다고 해도 주위에 맞춰진 퍼즐 조각 없이는 그 조각을 아무도 그 자리에 덩그니 두지 않는다. 혼자서 존재하는 퍼즐 조각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옆에서 잡아주지 않는 퍼즐조각은 자주 흔들린다. 그러니까 나는 혼자서 저 멀리 떠나고 다시 내 자리로 반복해서 돌아와야 한다. 수많은 조각들 중에 나는 어떻게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왜 나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머무르지 못 했을까.







최악의 선택




"가장 좋은 일은 태어나지 않는 일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슬퍼서 울고, 장례식 때는 기뻐서 운다." _장 칼뱅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태어났다면 자살는 것이 선이다." _쇼펜하우어




 미국의 한 재판장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희대의 연쇄 살인마는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루빨리 사형을 집행해 주면 좋겠다는 소감 밝혔다. 재판장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하루라도 빨리 죽으면 나는 하루빨리 또 태어나 살인을 저지를 거다. 오히려 기쁘다."는 소감에 사람들은 사형을 막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웅성거렸기 때문이다. 사형제가 폐지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형제가 폐지된 이유는 범죄자의 인권 때문이 아니라 살아서 받을 고통이 죽는 것보다 더하기 때문이다. 내가 철학자가 된다면 염세주의자가 되었을 거다. 누구나 정도는 다르지만 삶의 고통은 있다. 리는 매일 최선도 차선도 아닌 최악의 선택을 반복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이 평범한 다른 가정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건 결혼 후 한참이 지나서였다. 그전까지는 다른 이들도 비슷한 다른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겠지 막연히 생각했다.


 

 작은 아이가 태어난 후, 한 일 년간은 아이가 태어난 대학병원에 거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난 바람에 장도 안 좋고 폐도 안 좋고, 면역력도 안 좋았다. 은 병실에 입원해 있는 아이에게는 보호자가 아주 많았다. 병원에서 조식이 나오 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는데 병실을 들어오면서 "아이고 우리 딸. 밤새 힘들었겠다. 집에 가서 씻고 한숨 자고 저녁에 와."라며 딸과 교대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병원과 가까운 곳에 살고 계신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딸이 힘들까 걱정돼서 왕복 네 시간 거리에서 매일 오시는 거였다. 그러면서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내게 "친정이 멀리 사나 봐. 애기 엄마 힘들겠다."라고 하는 말에 얼떨결에 "네. 친정이 제주도예요."라고 말해버렸다.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전철 세정거장 거리에 살고 있는 엄마는 졸지에 제주도민이 되었다. 그냥 차라리 엄마가 제주도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역시 아이가 입원해 있는 내내 단 한 번도 병원에 온 적이 없다. 병원에서 나는 부모도 남편도 없는 사람 같았다. 그 이후로는 초라해지기 싫어서 병원에 입원할 때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모두 데리고 일인실에 입원했다. 네살짜리 딸은 의젓하게 아픈 동생과 지친 엄마를 도왔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물론 엄마도 대학병원에 진료를 보러 갈때 혼자 가신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엄마라서 그나마 다행이랄까. 만약 엄마가 정치를 했다면 아마 엄마는 파도파도 비리같은 건 나오지 않는 투명고 청렴결백한 정치인이 되었을 거다.



 나는 카르마를 믿는다. 카르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원죄이며 여러 생을 거쳐 앙갚음된다. 카르마가 존재한다면 나는 다음 생에도 그다음 생에도 "아이고 내딸"이라고 부르는 저런 부모님은 만날 수 없을 거다. 만약 죽은 후에 하느님을 만난다면 다시는 태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 거다. 게 장 칼뱅과 쇼펜하우어가 내게 전하는 가장 큰 교훈이다. 나는 앞으로 최선의 선택만 하고 싶다.



 각자 개성이 뚜렷한 제멋대로인 내 가족들 덕분에 내가 가진 퍼즐조각은  자리를 찾을 수 없다. 내 자리라고 생각한 곳에 있어도 결속력이 없어서 나는 안정적으로 그곳에 머무를 수 없으니 자주 스스로를 의심하며 괴롭힐 거다. 나는 끝내 안정적인 퍼즐조각이 될 수 없다. 내 퍼즐의 풍경화는 끝내 맞출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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