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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감기 아니고 대상포진

by 김소연



영혼의 감기 아니고 대상포진





영혼의 대상포진




_ 몸은 자꾸 땅을 파고들고 정신은 하늘 위에 둥둥 떠있어요. 계속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 같고, 지치고 짜증이 나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자꾸 견뎌내라고 해요. 우울증이 아닐 거라고. 우울증은 아무나 걸리냐고 묻는데 그 사람한테 나는 아무나도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울증에 걸리는 아무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왜 나는 우울하면 안 되는 거죠.


_ 우울증은 영혼의 감기라잖아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거예요. 면역력이 떨어지면 누구나 걸리는.


_ 감기요? 근데 감기는 시간이 지나면 낫잖아요. 왜 우울증은 낫지 않죠? 괜찮아졌다가 또 우울하고 괜찮아졌다가 또 우울하고. 감기보다는 대상포진 같은 거 아닐까요?



열아홉 살, 식탐이 대단했던 내가 삼 일간 곡기를 끊고 방에서 나오질 않자 엄마는 다급해졌다. 엄마는 밖에 외출도 하지 않고 나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 좋아하던 친구도 만나지 않고 언니와 무슨 작당모의를 하는지 내 방 앞을 서성였다. 환각증세도 심하고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로 한 즈음이었다.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던 날들이었다.







관심받지 않을 권리




그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가족이었다. 그냥 나를 내버려 두었으면. 어린 시절에 울 때는 실신할 때까지 혼자 내버려 두더니 울지도 않고 묵묵히 견뎌내는 나를 왜 들들 볶아 댈까. 언니는 엄마의 사주를 받고 내 일기장을 훔쳐보고 내 뒤를 캐고 다녔다. 환각증세는 가족들에게 말하기 싫었고, 일기장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야기를 소상히 적었다. 그게 나았다. 내가 남자친구가 있는 걸 모르던 가족들이 남자친구에 대해 묻길래 나는 언니와 의절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한동안 언니와 서먹한 관계를 유지했다.



우울증에 걸려 가장 힘들었던 건 조금 이상해진 내게 보내는 주변 사람들의 나친 관심과 우울증에 대한 부정이었다. 우울증은 영혼의 감기라는데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그 원인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자 왜 우울한지 이유를 함께 알아보자." 감기에 걸린 사람에게 감기에 걸린 이유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울증에 걸린 이유에 대해서는 마치 죄를 지은 양 설명이 필요한 거다. 특히 가족들에게는 우울증의 원인이 당신이 아니라는 안심도 시켜야 한다. 영혼이 아픈 사람이 타인의 영혼을 달래주는 상황이 되어서야 느낀다. 앞으로는 우울증을 숨겨야겠다고. 우울한 사람은 누군가를 위로해 줄 기운이 남아있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울증을 숨기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흔히 우울증을 영혼의 감기라고 하지만, 내가 의사라면 나는 우울증을 영혼의 대상포진이라 부르고 싶다. 태어나서는 면역력을 가지고 있지만, 엄마 품에서 떨어져 나와 걷기 시작하면서는 언제든 걸릴 수 있는 수두. 수두에 한번 걸린 후 면역력이 떨어지면 언제든 걸릴 수 있는 대상포진.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감기처럼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겠지만, 감기와는 달리 쉽게 낫지 않고 면역력이 떨어지면 언제든 다시 발병할 수 있는 대상포진 같은 거라고. 리 모두 우울증 보균자이고 예방주사를 맞아도 소용없다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도 언제든 우울증이 올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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