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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29. 2023

못생긴 애들 중에 내가 제일 잘생긴 것 같대



못생긴 애들 중에 내가 제일 잘생긴 것 같대





자꾸만 질척거리는 절망




 가을비가 내리면 거리에 흩어져 있던 낙엽들이 질척거리기 시작한다. 가을의 상쾌한 바람에 한껏 멋을 품고 날리던 낙엽은 더 이상 날아오르지 못한다. 마치 누군가가 내게 준 절망이 질척거리며 마음에 달라붙은 것처럼. 내 진동하며 작은 입바람으로도 날아갈 수 있던 낙엽은 내 눈물과 엉겨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



 절망은 희망처럼 잠시 머물지 않는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뺏길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내게 한번 온 절망은 누구도 다시 가져가지 않을 테니. 절망이 오기 전으로 되돌려놓을 이유도 없으니 언제든 내게 온 절망을 내다 버릴 수 있다. 처음부터 절망은 없던 것처럼. 하지만 내내 그것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희망처럼 누군가가 내 절망을 가져가 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아무도 타인의 절망에는 관심이 없다. 도둑맞을 걱정도 안절부절못할 이유도 없다. 일부러 누가 가져가도 좋고, 우연히 분실해도 좋다. 때론 바람에 날아가도 좋을 낙엽. 하지만 절망은 낙엽처럼 가볍지 않다. 내게로 와 손을 놓아도 날아가지 않을 만큼 묵직해진 절망을 놓칠세라 꼭 부여잡고 누군가에게로 넘겨주려 애쓰지만 아무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절망이 삶에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_ 아무 생각 없이 살 때는 괜찮았는데, 삶에 희망을 발견하고서는 조급해져요.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시간에도 강박증이 생길 것 같아요.



 희망을 품으면 절망은 더 자주 온다. 아무도 내 절망을 탐하지 않는다. 되돌려 놓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절망을 놓지 못하는 건 나였다. 절망인지 희망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일도 많았다.







못생긴 애들 중에 내가 제일 잘생긴 것 같대




"못생긴 애들 중에 내가 제일 잘생긴 것 같대." <오늘부터 1일> _케이윌



 딸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담임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딸은 키가 작은 아이들 중에 제일 키가 크다."라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여러 번 곱씹어보느라 학부모 상담은 엉망이 되었다. 나는 한 번에 두 가지 생각을 하거나, 지금 생각난 일을 나중으로 미루지 못한다. 우리 딸은 7살에 학교에 입학했으니 칭찬인가? 아니지. 욕인가? 잘생긴 애들 중에 제일 못생긴 애와 못생긴 애들 중에 제일 잘생긴 애. 둘 중에 더 나은 건 무얼까? 곰곰이 여러 날을 고민했다. 둘 중에 하나를 고른다면 아마 나는 후자가 더 나을 것 같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더 마음은 편할 테니. 자신이 용인줄 알았지만 꼬리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는 것보다 뱀인 알고 절망했지만 그래도 머리는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더 희망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용은 될 수 없겠지만.



 우울증에 관한 책들을 읽다 보면 어쩌면 우리 부모님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세상엔 우리 부모님보다 더한 부모님이 많았다. 그러니 우리 부모님은 못된 부모님들 중에 가장 착한 부모님인가. 조금 희망을 가져보고자 했다. 하지만, 역시 뱀의 머리라고 해도 용은 될 수 없다. 나보다 더 큰 절망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해도 내 절망이 괜찮아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조금은 희망을 보고자 노력해야지. 희망 속에서 절망을 발견하는 것보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게 더 나을 테니까.



 우울한 애들 중에 내가 제일 발랄한 것 같대. 맞아. 그냥 이렇게라도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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