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연 Nov 11. 2023

중독에 중독되다



중독에 중독되다.





행복한 사람순으로 줄을 세운다면




 행복한 사람순으로 서울부터 줄을 세운다면 나는 부산이나 아님 제주도쯤에 있을 거다. 순서가 자꾸 밀리니 내 시간은 무력할 테고, 효용가치가 떨어질 거다. 학력이나 통장잔고로 줄을 세우는 건 알겠는데, 행복으로는 어떻게 줄을 세워야 할지 조금 난감하겠지만, 그래도 확실다. 정확한 지표는 없지만, 아마 인도의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처럼 앞에 있는 사람과 단 1센티의 틈도 없이 포개어 늘어놔도 결국 수도권에는 머물지 못할게 분명했다.


 

 한번 우울을 마음속에 허락하면 결국 자주 그것들에 휘둘리게 된다. 처음부터 우울에 엄격했어야 했다. 호의가 지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더니, 내 우울은 무력한 마음 안에서 자주 권리를 외쳤다. '나 우울하니 알코올을 집어넣으라'든지, '나 우울하니 자극적인 매운맛을 집어넣으라'든지. 그 외에도 나는 밤새 게임을 했고, 때로는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중독적인 것들에 중독되었다.



_ 아플 때 약 대신 술을 찾아요. 너무도 당연하게 가족들도 아프다고 하면 술을 권하고요. 매일 아프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인데, 앞으로 매일 아프게 될까 봐 걱정이에요.








 이런 말을 하는 환자가 있다면 의사는 절망스러울 거다. 아니, 어쩌면 자신을 잘 알고 있는 환자를 신뢰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나를 숨기지 말아야 할 사람은 변호사와 의사라고 했다. 그들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가족들은 변호사도 아니고 의사도 아니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신뢰를 얻는 게 아니라 천천히 상처를 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변호사도 의사도 아닌 그들에게 우울의 민낯을 보이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그들에겐 비밀 서약이나 직업윤리, 또는 경제적 이득이 없으니 상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끙끙거릴 이유 같은 건 없을 테니.





중독에 중독되다




 나는 우울감을 잊으려고 자극적인 걸 찾았다. 요즘은 매운맛에 중독되어 있다. 처음에는 얼큰한 맛이면 족했지만, 이제는 1단계가 아니라 2단계, 3단계가 되어도 만족할 줄 모른다. 속은 아파오지만 입속은 덤덤한, 자극에 익숙한 혀를 가지게 되었다. 언젠가 내 최애 연예인이 매운맛 중독이라는 말에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고, 일본 라멘에 중독된 그를 보며 입맛에 맞지도 않는 라멘을 사 먹기도 했다.  예전에 오사카에서 먹었던 그 중독적인 매운 라멘 맛을 내는 라멘집은 찾을 수 없었지만.







 극한의 맛에 중독된 사람은 아마 삶의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일 거다. 극한의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 현실을 잊고 싶은 마음 같은 . 예전에 본 어느 만화영화에서는 빨리 뛰기 위해 주인공의 엉덩이에 불을 붙였다. 심지가 다 탈 때까지 결승선에 도착해야 한다. 그래야 불을 끌 수 있다. 꽤 그럴듯했다. 사람은 극한 상황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 결승선에서는 주인공의 친구가 소화기를 들고 초조하게 서 있다. 결승선에 도착한 주인공은 또 다른 자극을 찾는다. 이제는 커다란 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그를 쫓는다.



 나는 중독에 중독되어 있다. 다한 가지를 집착하지 않으며 그게 병이 될 수 없길 바란다. 오늘은 매운맛. 내일은 쓴 맛. 그게 우울에 중독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다. 단 하나의 것에 잠식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늘 같은 자극은 사람의 뇌를 둔하게 만들 테니까. 그러니 오늘은 엉덩이에 불을 붙이고 열심히 뛰고, 내일은 커다란 개를 피해 열심히 달리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