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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Nov 11. 2023

중독에 중독되다



중독에 중독되다.





행복한 사람순으로 줄을 세운다면




 행복한 사람순으로 서울부터 줄을 세운다면 나는 부산이나 아님 제주도쯤에 있을 거다. 순서가 자꾸 밀리니 내 시간은 무력할 테고, 효용가치가 떨어질 거다. 학력이나 통장잔고로 줄을 세우는 건 알겠는데, 행복으로는 어떻게 줄을 세워야 할지 조금 난감하겠지만, 그래도 확실다. 정확한 지표는 없지만, 아마 인도의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처럼 앞에 있는 사람과 단 1센티의 틈도 없이 포개어 늘어놔도 결국 수도권에는 머물지 못할게 분명했다.


 

 한번 우울을 마음속에 허락하면 결국 자주 그것들에 휘둘리게 된다. 처음부터 우울에 엄격했어야 했다. 호의가 지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더니, 내 우울은 무력한 마음 안에서 자주 권리를 외쳤다. '나 우울하니 알코올을 집어넣으라'든지, '나 우울하니 자극적인 매운맛을 집어넣으라'든지. 그 외에도 나는 밤새 게임을 했고, 때로는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중독적인 것들에 중독되었다.



_ 아플 때 약 대신 술을 찾아요. 너무도 당연하게 가족들도 아프다고 하면 술을 권하고요. 매일 아프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인데, 앞으로 매일 아프게 될까 봐 걱정이에요.








 이런 말을 하는 환자가 있다면 의사는 절망스러울 거다. 아니, 어쩌면 자신을 잘 알고 있는 환자를 신뢰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나를 숨기지 말아야 할 사람은 변호사와 의사라고 했다. 그들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가족들은 변호사도 아니고 의사도 아니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신뢰를 얻는 게 아니라 천천히 상처를 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변호사도 의사도 아닌 그들에게 우울의 민낯을 보이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그들에겐 비밀 서약이나 직업윤리, 또는 경제적 이득이 없으니 상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끙끙거릴 이유 같은 건 없을 테니.





중독에 중독되다




 나는 우울감을 잊으려고 자극적인 걸 찾았다. 요즘은 매운맛에 중독되어 있다. 처음에는 얼큰한 맛이면 족했지만, 이제는 1단계가 아니라 2단계, 3단계가 되어도 만족할 줄 모른다. 속은 아파오지만 입속은 덤덤한, 자극에 익숙한 혀를 가지게 되었다. 언젠가 내 최애 연예인이 매운맛 중독이라는 말에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고, 일본 라멘에 중독된 그를 보며 입맛에 맞지도 않는 라멘을 사 먹기도 했다.  예전에 오사카에서 먹었던 그 중독적인 매운 라멘 맛을 내는 라멘집은 찾을 수 없었지만.







 극한의 맛에 중독된 사람은 아마 삶의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일 거다. 극한의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 현실을 잊고 싶은 마음 같은 . 예전에 본 어느 만화영화에서는 빨리 뛰기 위해 주인공의 엉덩이에 불을 붙였다. 심지가 다 탈 때까지 결승선에 도착해야 한다. 그래야 불을 끌 수 있다. 꽤 그럴듯했다. 사람은 극한 상황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 결승선에서는 주인공의 친구가 소화기를 들고 초조하게 서 있다. 결승선에 도착한 주인공은 또 다른 자극을 찾는다. 이제는 커다란 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그를 쫓는다.



 나는 중독에 중독되어 있다. 다한 가지를 집착하지 않으며 그게 병이 될 수 없길 바란다. 오늘은 매운맛. 내일은 쓴 맛. 그게 우울에 중독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다. 단 하나의 것에 잠식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늘 같은 자극은 사람의 뇌를 둔하게 만들 테니까. 그러니 오늘은 엉덩이에 불을 붙이고 열심히 뛰고, 내일은 커다란 개를 피해 열심히 달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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