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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May 31. 2024

내 편을 정할 시기



내 편을 정할 시기





내 편이 없어요



_ 내 불행은 나만 혼자 알고 싶은데 자꾸 아는 척을 해요. 저는 점점 고립돼요. 사회로부터 멀어져요.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을 궁금해한다. 불행할 때에 득달같이 달려들던 사람들은 내 기쁜 소식엔 등을 돌렸다. 많은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서운해졌다. 언제든 버려지거나 버릴 인연이었겠지만. 내 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건 불행할 때가 아니라 기쁠 때이다. 그래서 행복하다가 불행해지기도 한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휘둘려 존재감이 없던 날에 나는 웃으며 울었다.



그렇고 그런 영화 같기도 했다. 삶이란 건 늘 웃다가도 울고 싶어지는 조울증 같은 거였다. 내 삶은 그렇고 그런 단편 영화도 아닌 동시상영 중인 싸구려 영화 같았다. 나는 이름도 역할도 없는 단역 배우다. 누군가의 옆을 지나가도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아니 알아보려 하지도 않을 대사도 없는 엑스트라. 그게 편했다. 언젠가 나는 제대로 된 역할을 맡고 싶어 졌지만 어림없었다. 대사 한번 해본 적 없는 내가 길고 긴 문장을 내뱉을 용기가 쉽게 생기는 게 아니다. 혼잣말을 삼키다가 결국 나는 맨 끝 자리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게 마치 내 자리인 것처럼. 관성의 법칙처럼. 나는 그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리고선 조금 편해졌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으니까. 세상의 중심으로 들어가려면 사람들의 눈빛을 견뎌내야 한다. 나는 두려워졌다. 매번 반복되는 불행을 들키고야 마는 일이 이제 불편해졌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순 없다. 두려움에 떠는 나를 보는 시선들 속에, 경멸하는 눈빛에도, 의아한 눈빛들에서도 간혹 따스한 시선 하나는 마주칠 수 있을 거다. 그이는 내 편이 되어줄 것이다. 언제든 손 내밀어 줄 것이다. 그 손을 뿌리친 건 늘 나였다. 가끔은 내 불행에 대해 말해도 부끄럽지 않을, 나의 기쁨에 온전히 기뻐해 줄 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게 비록 나 자신 뿐일지라도.







내 편이 나 혼자 뿐일지라도




_ 내 편을 외부에서 찾지 않아도 돼요. 나는 언제나 내 편이니 적어도 한 명은 내 편이잖아요.




내가 불안했던 이유는 내 편이 한 명도 없는 것 같은 불안감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세상에 나 혼자 남게 되더라도 나는 늘 내 편일 거다. 내가 누군가의 비난을 견뎌낼 수 있는 것 내 안 든든한 내 편이 있기 때문이다. 불행할 때도 기쁠 때도 온전히 그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건 나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타인의 의견에 주눅 들 필요 없다. 기적인 누군가의 날카로운 말에 게슴츠레하게 뜬 누군가의 눈빛에나는 나를 잘 지켜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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