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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16. 2023

자주 깜빡하는 강박



자주 깜빡하는 강박





자주 깜빡하는 강박




_ 예전에 저는 꽤나 집중력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몇 시간을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마감시간에 맞춰 컴퓨터 앞에서 그림을 그렸고요. 600페이지가 넘는 소설책을 한 번에 완독 하기도 했어요.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앉은자리에서 두세 번씩 수정하기도 했요. 그런데 요즘은 넷플릭스에서 시리즈 드라마를 보다가 멈춤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으로 유튜브 쇼츠를 봐요. 그러다가 갑자기 고양이 화장실 청소를 하고요. 빨래를 가져다 개요. 그러다가 먹방 유튜브에 나온 음식을 배 앱에서 찾아보고요. 그러다가 청소를 해요. 또 아까 보던 드라마를 이어서 보다가 내용이 기억이 안 나서 꺼버리고 낮잠을 자요. 자다 일어나 세수도 안 하고 급하게 밖으로 볼일을 보러 나가요. 나는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해요. 



  그냥 되는대로 살라고. 어차피 계획을 열심히 세워도 그 계획에 반에 반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이라면, 그냥 살아도 좋다고. 정신과 의사는 틀에 박힌 사고가, 또 그것을 차질 없이 해내려는 의지가 오히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깜빡깜빡 무언가를 자주 잊는 이유는 강박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향한 과도한 집착은 그 외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등한시하게 된다. 내가 가진 가장 심각한 강박은 안전에 이었다.



 자다 일어나서 현관문의 걸쇠가 걸렸는지 확인하고, 가스레인지 밸브가 잠겼는지 확인한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원한을 진 일도 없으니 누군가 우리 집을 밤늦은 시간에 방문할 일도 없고, 가스가 샌다면 자동잠금장치가 작동할 테고 내가 하는 대부분의 걱정은 실제로 아무 의미 없 것들이다. 이걸 곁에서 보는 이들이 오히려 불안해질 뿐이다. 아이들에게 대체 세상을 어떻게 살 거냐 걱정을 지만 사실 집에서 가장 문제가 있는 건 나였다. 나는 이런 아주 사소한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정작 중요한 일정은 잊기 일쑤 때문에 내 강박엔 명분이 없는 셈이다. 그야말로 내 마음만 편하자는 처사다.







 이런 사람이랑 살다 보면 같이 사는 사람도 고생이다. 잠들기 전에 다 확인을 했지만 자주 벌떡벌떡 일어나는 엄마를 위해 아이들은 수시로 집안 상태에 대해 내게 보고를 한다. 들어올 때 걸쇠는 걸었고, 집안 불도 다 껐다고. 내가 조금 더 예민해진다면 자칫 아이들도 강박증에 걸릴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됐다. 아주 산만하게 무언가를 하는 이유는 머릿속의 생각을 없애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래도 생각을 쉽게 멈출 수는 없다. 그러니 글을 읽어도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등장인물이 많은 해리포터 같은 건 두어 장 읽다가 손을 부들대며 던져버린다. 감정은 언제나 이성을 이기고, 아주 사소한 걱정이 늘어간다. 생각을 줄이려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하다 보니 어느 하나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고, 약속시간엔 늘 늦는다. 매일 비슷한 아이들의 일과를 반복해서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내 정신은 언제나 하늘을 떠다닌다. 부력이 대단해서 내 힘으로는 끌어올 수가 없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강박 따위




  엄마는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여태 엄마가 무언가를 깜빡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엄마는  중요한 것들을 때에 맞춰 척척 해냈다. 눈앞의 것들에 급급한 근 시안을 가진 나와 미래를 계획하는 엄마. 아주 작은 것들을 소소히 기억하는 나와 불리한 건 쿨하게 잊는 엄마. 서로 닮은 구석 없는 모녀 사이였다. 나는 과거에 집착하며 엄마를 괴롭히고, 엄마는 미래를 보느라 내 말 같은 건 들을 수 없다. 우리는 어쩌면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 살고 있다.



 엄마는 자주 깜빡깜빡하는 내게 "네가 그렇지 뭐. 뭘 기대하겠어."라고 자주 말한다. 어쩌면 그 말을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내게 효도를 기대한다면 나는 크게 엇나갈 테니까.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이유는 사람이 덤벙대서 일거라 생각하니까. 나는 하나의 강박을 덜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강박 같은 건 가져본 일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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