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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12. 2023

싫어하면서 닮는다



싫어하면서 닮는다





분노조절장애




_ 사람은 싫어하면서 서로 닮아간대요. 아버지가 화날 때마다 물건을 집어던지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어느 순간 제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남편한테 뚝배기를 집어던졌어요.



 밥을 먹다가 식탁에 있는 김치찌개 뚝배기를 남편한테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남편이 앉아있는 자리 뒤편의 하얀색 벽지가 빨갛게 물들었다. 나를 대신해 피눈물을 흘리는 벽지를 보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방으로 들어가 남편의 옷가지와 필요한 몇 가지의 물건을 큰 트렁크에 담았다. 내가 짐을 싸는 동안 남편은 아주 선한 얼굴로 아이들을 안심시키고는 그 흔적을 지웠다.



 남편은 사업가답게 말을 잘하는 편이었다. 특히 비아냥거리는데 선수였다. 남편은 내게 숨기는 게 없다며 아주 솔직하게 밖의 일들을 말했는데 나는 제법 쿨했다. 남편이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렀다 해도, 한복을 입은 여자들이 술을 따라주는 술집에 가봤다 해도, 남편의 입에서 텐프로의 아가씨들이 예쁘다는 말이 나왔을 때도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 한 달에 천만 원씩 생활비를 턱턱 주는 남편이 사회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지만 그날은 연예기획사를 차리면 어떨지 고민이라며 어젯밤 모 중소연예기획사 대표와 아이돌 연습생을 만났는데 예쁘더라고 말하는 꼴을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 전날 남편은 술이 진탕 취해 새벽에 들어왔다.



 내가 더러운 짓 하고 다니지 말라고 말하자 술집여자가 너보다 깨끗하다는 정신이 반쯤 나간 소리를 하기에 정신 차리라고 마침 눈에 보이는 것들 중 가장 튼튼해 보이는 뚝배기를 던진 거다. 그 광경을 보고 그새 또 정신을 차렸는지 그냥 그 여자들 몸에선 좋은 냄새가 난다는 말이었다며 말을 바꾸려 애썼다. 아마 그 뚝배기가 남편의 머리 적중해 피를 흘렸다면 그때 나는 남편을 용서했을지도 모른다.



 딸은 네 살, 아들은 한 살 때의 일이다. 아들은 미숙아로 태어나 몸이 아주 약했다. 태어나고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았고, 근 일 년간을 대학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때인데 매일 새벽에 귀가하는 남편 대신 독박육아를 하는 내 몸에서 어떻게 좋은 냄새가 날 수 있을까. 가 나진 않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그날 내가 싸준 몇 가지의 물건이 담긴 트렁크를 들고 집을 나갔고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시누이들의 전화가 빗발쳤고 전라도 벌교 사람들처럼 다소 험한 욕이 들려왔다. 나는 시누이들의 착한 남동생을 괴롭히는 악녀가 되었다.








사람은 싫어하면서 닮는다




 나는 그 이후로도 남편에게 화가 나면 무언가를 집어던졌고 그때마다 남편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에 던졌던 강력한 뚝배기가 아니라 주로 깨지지 않고 치우기 쉬운 것들을 던지는 바람에 남편에게 가는 타격감은 전혀 없었다. 어린 시절 세상일에 무감각했던 나는 어느새 아버지처럼 분노조절장애자가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도 친할머니가 늘 말했던 착한 내 아들이 화가 나면 헐크가 되는 데에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 거라는 말이 진실일지도 모른. 내가 본 엄마는 비아냥거리는데 선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니까.



 부모님을 원망하며 닮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아주 흔하다. 국에 나는 부정적인 것들을 습득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알코올중독도, 화가 나면 헐크가 되는 것도, 친구가 없는 것도 꼭 닮은 나였다.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모습에서 숨기고 싶은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세상 대부분의 것들을 싫어하는 나는 아주 부정적인 것들을 많이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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