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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13. 2023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경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경계





경계성 인간




_ 엄마를 보면 좋은 사람 같기도 하고 나쁜 사람 같기도 해요. 또 엄청 똑똑한 사람 같다가도 어떤 때에는 되게 바보 같아요. 또 개방적이다가 엄청 고지식해지기도 하고요. 엄마를 잘 모르겠어요. 엄마는 내가 정한 어떤 기준의 경계에서 널뛰기를 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어떤 때에는 엄마가 너무 좋고 어떤 때에는 너무 싫어요. 실히 좋거나 확실히 나쁘다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확실하게 한쪽을 선택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은데 그러질 못해요. 결국에는 내가 나쁜 사람이 되거나, 등신 같거나 그렇잖아요.


_ 사람과의 관계에서 경계를 정하지 말아요. 어떤 기준에 얽매이지도 말고요. 내 기준에 부합하는 건 나만 지키면 되는 거예요. 남들이 내 기준을 맞출 필요는 없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경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면 나는 아마 우울증 같은 건 걸리지 않았을 거다. 좋아하는 게 싫어하는 게 되거나, 싫어하는 게 좋아하는 걸로 바뀔 때 나는 그전의 나를 질책하고 만다. 좋아하는 게 싫어하는 걸로 바뀔 때에는 여태 왜 그걸 좋아했는지 이제까지의 내가 등신 같고, 싫어하는 게 좋아하는 걸로 바뀔 때에는 여태 왜 그걸 싫어했는지 이제까지의 내가 또 등신 같았다. 결국 나는 내 감정이 변할 때마다 등신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한번 좋아한 건 끝까지 좋아하려 애썼고, 한번 싫어한 건 끝까지 싫어하려 애썼다. 나는 점점 폐쇄적인 인간이 되었다.



 그런 내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경계에서 널뛰기를 하는 엄마가 마음에 들리 없었다. 차라리 어느 때에는 늘 미웠던 아버지가 더 낫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버지는 늘 미우니 그 과정에서 내가 등신 같아질 이유가 없었으니까. 아마 내가 어린 시절 가장 싫었던 건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정한 기준을 엄마에게만 유독 엄격하게 들이댔으니까. 엄마는 자기가 정둔 것들 중, 해야 할 건 무슨 일이 있어도 했고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건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않다. 그래서 가끔은 그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엄마를 질책했고, 그건 해줄 수도 있지 않냐며 엄마를 원망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기준을 세우는 건 그만둬야 한다. 내가 어떤 기준을 세우면 그 기준에 맞는 평가가 이뤄지게 된다. 기준이 없다면 평가도 없다. 누군가 나를 평가하며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만의 기준이 있는 사람인 거다. 리스로마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는 자신이 정한 침대에 사람들을 눕히고는 그 길이보다 짧은 사람은 몸을 침대 길이만큼 늘려 죽이고, 그 길이보다 긴 사람은 침대 길이만큼 잘라서 죽였다. 지만 결국 그도 그가 정한 그 길이를 맞추지 못했다. 그는 그리스로마신화에서 헤라클레스 다음으로 힘이 센 테세우스에 의해 그가 하던 대로 자신이 정한 침대 길이만큼 잘라져 죽었다.



 우울을 놓아주려면 제멋대로 날뛰는 그날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 주면 된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결국은 잔잔한 호수 같이 평화로워질 테니까. 프로크루스테스처럼 곁에 있는 사람 모를 잃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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