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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12. 2023

환청과 망상



환청과 망상





날 부르는 노래




_ 처음 환청 들 건 열일곱 살 때였어요. 자꾸 방 밖에서 가족들이 나를 불렀어요. 근데 나가보면 아무도 없는 거예요. 가족들이 나를 놀리는 건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집에서 방문을 꼭 닫고 있던 건 저 하나뿐이었거든요. 제 방문이 닫혀있는 걸 가족들은 싫어했어요. 그래서 장난을 치는 줄 알았죠. 처음엔 환청이 들릴 때마다 방문을 확 열어보기도 하고 빼꼼히 열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엔가부터 모르는 사람 목소리가 들렸어요. 처음 들어본 노래도 들렸고요. 그래서 가족들이 장난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죠. 어느 날엔 엄마가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문을 닫는 엄마 손이 두 개인 거예요.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어요. 엄마가 너무 놀랐는지 뒤로 넘어졌어요. 저는 점점 이상해졌어요. 그러다가 제가 미치는 건 아닌지 두려웠어요.



 영화 뷰티풀마인드에서는 천재 수학자인 존 내쉬(러셀 크로우)를 따라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다. 대학시절 내내 같은 기숙사를 썼던 친구와 주인공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물들이었다. 세월이 흘러 존 내는 결혼을 하고 주름이 늘어갔지만 친구들은 여전히 예전 그 모습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자신 곁을 지키던 친구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상상 속의 인물이었음을 알아차렸다.



 환각증세가 시작되면서 나는 내가 신병에 걸렸거나 조현병에 걸린 줄 알았다. 만약 신병라면 아마 무당이 된 후에 큰고모로부터 버림받은 사촌언니처럼 나도 가족들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친할머니가 그때 살아계셨다면 나는 조금 안심이 됐을 거다. 자신의 딸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손녀를 위해 할머니는 죽을때까지 큰 딸을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도 돌아가셨고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세상을 더 이상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을 거라.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조현병에 걸린 존 내쉬가 삶을 열심히 살 수 있었던 건 나와는 다르게 환각증세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생전 처음 보는 귀신이 사람으로 여겨진다면, 또 그들과 친구가 된다면 그들을 무서워하지 않을 거다. 군가와의 관계가 려운 이유는 그들의 속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는 가족들이 두려워하는 허무맹랑한 소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누군가 내 귀에 대고 나를 놀려대도 처음 들어보는 노래가 흘러나와도 모른척하면 곧 나아졌다. 내가 환각증세를 앓고 있다는 건 그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나만의 비밀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기면증 진단을 받았고, 환각증세가 기면증의 증상 중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더는 내가 가진 두려움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여전히 공공연한 비밀이다. 나를 아는 사람 그 누구도 그걸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망상




_ 나쁜 생각을 하면 환청이 들려요. 어제도 환청이 들렸어요.


_ 어떤 나쁜 생각을 하셨나요?


_ 제가 세상에서 없어지는 거요. 그리고선 장례식에 온 그들을 바라보는 거죠. 누가 울고 있는지 혹은 웃고 있는지. 그래서 제가 죽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혼쭐을 내주는 거예요.


_ 죽은 후에 복수를 하면 그들이 눈치챌 수 있을까요?



 그저 생각뿐이다. 아서는 용기가 없으니 죽어서라도 한을 풀고 떠나겠다는 절절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아마 그들은 아무도 나를 알아차릴 수 없을 거다. 살아서도 존재감이 없던 나는 죽어서도 존재감이 없을 테니. 정신과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환자는 아주 많을 거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에게는 나도 그들 중 하나일 뿐이니, 내게 죽고 싶다는 말을 들어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을 거다. 만 환자인 내가 어떤 상태인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니 내가 꼭 죽어서 정신과 의사를 괴롭혀야겠다는 상상을 조금 해보았다. 론 그런 용기는 전혀 생기지 않았다. 아마 의사도 내가 절대 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을 거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그 불합리함으로부터 나를 침묵하게 했다. 아무리 거지 같은 관계일지라도 버림받는 건 싫다. 얌전히 때를 기다린다. 내가 아주 강해지고 용감해질 때를. 언젠가 준비가 되면 나는 날개를 활짝 펴고 멋지게 비상할 수 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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