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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11. 2023

불면증과 안구건조증



불면증과 안구건조증





불면증




_ 잠이 오질 않아요. 생각할게 많아서요. 생각을 하다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들고 관없는 또 다른 생각을 만들어내요. 생각이 길어지면 결국에 나는 우주에 있어요. 가장 힘든 건 아이들 생각을 할 때마다 부모님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자꾸 부모님을 원망하게 되거든요. 저는 기억력이 너무 좋아요.








상상의 기억법




 정신과에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하면 수면제나 수면유도제를 처방해 준다. 나는 수면제보다 내성이 덜 한 수면유도제를 처방받았는데 보통의 경우 수면유도제는 오랜 기간 동안 복용 시에 내성이 생긴 다지만 나는 두 번째 복용에 내성이 생겼다. 복잡한 내 생각이 수면유도제를 이긴 거다. 는 생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한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건너가는 가장 좋은 다리는 밤에 단잠을 자는 것이다.'_ 일라이 조셉 코스만_ 나는 늘 절망에 머물러 희망으로 건너가지 못한다.



 기억력이 좋은 건 단잠을 자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박증도 마찬가지다. 기억력이 좋은 편인 내가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건 정말 최악이다. 학창 시절엔 기껏 암기한 걸 자는 새에 잊어버릴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거의 실신하기 직전까지 머릿속에 되뇌었고, 불면증을 겪었다. 그게 공부를 포기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요즘엔 자다가 꿈에서 나온 장면 중 쓸만한 걸 기억하다가 밤을 새기도 하는데 결국 일어나면 머릿속은 하얗다. 내 머릿속은 점점 하얘진다. 마치 내 머리카락처럼.



 불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원망하는 마음이다. 무언가 원망하는 일이 있다면, 나는 자면서 소설을 쓴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었다가, 커다란 칼을 쥔 자객이 되었다가, 결국엔 파멸해버리고 만다. 상상력을 없앨 수만 있다면 나는 내 영혼을 팔아넘길 거다. 영혼을 팔고 얻을 인어공주의 멋진 다리 같은 건 필요도 없다.






안구건조증




 아이들을 낳고 나선 엄마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인데, 나도 엄마에게 예쁜 아이었을까. 기억력이 좋은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네 살 때 살던 집 화장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지금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지만 도무지 엄마가 나를 따스하게 안아준 기억은 없다. 마치 나는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라서 감정의 교류 같은 건 철저히 기억에서 배제했다기엔 우는 나를 안고 어딘가로 걸어가던 교복을 입고 있는 큰삼촌에 대한 기억은 있다는 거다. 부모님은 내가 아주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내가 울 때 나를 다른 방에 혼자 내버려 뒀다. 나는 언제까지 나를 그냥 내버려 두겠냐 생각하며 실신할 때까지 울다 잠들기 일쑤였다. 조금 크면서부터 나는 전혀 울지 않는 아이가 됐다. 사춘기시절 말썽을 부리고 돌아다닐 때 아버지가 내게 매를 들 때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때 부모님은 날 보고 잘못을 빌지도, 울지도 않는 독한 년이라고 했다. 우는 것도 받아 줄 사람이 있어야 우는 거다. 내가 지금도 사람들 앞에서 잘 울지 않는 이유 아무도 내 눈물에 답해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무 살인 딸이 어젯밤에 나쁜 꿈을 꾸었다며 자는 나를 깨워 울먹이는 걸 보니 엄마 생각이 났다. 나보다 덩치도 커진 딸아이가 나는 아직도 아기 같다. 기억력이 좋은 건 내겐 독이다. 독을 한 움큼 삼키고 억지로 눈을 감는다. 잠들지 못한 감은 눈엔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눈이 뻑뻑해 한참을 깜빡였다. 눈물을 참다 보니 이제 꼭 필요한 최소한의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 안구건조증은 눈물을 참아서 걸리는 것 같다.  안구건조증 때문에 잠이 오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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