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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09. 2023

착한 아이 콤플렉스



착한 아이 콤플렉스





우울의 날개를 고이 접어




 우울의 날개를 고이 접어 심연으로 빨려 들어간다. 허우적대지 않고 더 깊은 수렁으로 더 깊은 늪으로. 갑자기 정신을 놓게 되어 날개를 퍼덕여도 좀처럼 오르지 못할 곳으로.



 나는 세상의 거의 모든 것에 공포증이 있어 세상으로부터 숨어야 한다. 높은 곳도 빠른 것도 누군가의 시선도 두려워 나는 날개를 펼 수 없다. 나는 날개고이 접어 안으로 한없이 욱여넣고 심연으로 숨는다. 있는 힘을 다해 퍼덕거려도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곳으로. 



 죽고 싶은 날이 잦았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어느 날 조카가 죽었다. 언니는 전화를 할 거라는 톡도 없이 내게 전화를 해서는 내 이름을 세번 부르더니 아들이 죽었다고 했다. 처음엔 내가 내 아들한테 하는 말처럼, 조카가 언니의 마음에 들지 않아 죽이고 싶다는 저그런 신세한탄인 줄 알았다. 횡설수설 말하는 걸 보니 처음에는 언니가 낮술을 했나 싶었고, 잠시 후엔 만우절인가 싶었다. 결국 낮술도 아니고 만우절도 아니었다. 나는 언니보다 더 크게 울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고, 나는 장례식이 끝난 후에도 꼬박 열흘을 더 울었다. 스물다섯, 만으로 스물셋이었던 그 아이는 늘 웃는 아이였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의 미인, 아름다운 사람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을 뜻한다. 아름다운 사람. 내 착한 언니와 내 착한 형부를 닮은 내 착한 조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언니는 "아들이 죽었다.", 그다음으로는 "엄마한테 어떻게 말하지."라며 오열했다. 그 상황에 엄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말도 안 된다. 그럴 수는 없는 거다. 자식 잃은 어미가 자신의 어미 걱정이라니 바보 같았다. 오십이 다 되도록 여태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니 한심했고, 곧이어 조금 안쓰러워졌다.  부모님 사이에서 눈치 보던 과거의 어린아이는 끝내 언니를 놓아주지 않았다.



 엄마는 자주 집을 나갔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늘 화가 나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나는 언니와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게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어느 날엔가 아버지가 내게 엄마는 너 때문에 집을 나갔다는 말을 했을 때 정말 그 말을 믿었다. 같은 골목의 친구네 집에 잠깐 놀러 간 사이에 엄마가 곱게 화장을 하고 뾰족구두를 신고 유유히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걸 나는 보고만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모든 건 내 탓일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엄마가 집을 나갈 때마다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지만 언니에게는 그나마 조금 친절한 것 같았다. 청소년기가 되어서는 왜 아버지가 유독 내게만 화를 내는지 알 것도 같았다. 언니는 엄마가 집을 나갈 때마다 아주 착한 아이가 되어있었다. 심부름도 척척, 집안일도 척척, 밥상도 척척 잘 차려냈다. 언니는 베알도 없는 사람이구나. 아버지에게 사랑받으려고 저렇게 아양을 떠는구나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모두 제멋대로인 눈치없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엄마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날엔 자주 집안의 가전제품이 날아다녔다. 무언가를 집어던지는 다른 아버지들은 깨져도 위험하지 않거나 값이 싼 걸 집어던진다던데 이상하게 우리 아버지는 늘 가전제품 집어던졌다. 그 마르고 왜소한 몸으로 커다란 브라운관 티브이를 번쩍 들어올릴 때에는 마치 분노한 헐크 같았다. 그 덕분에 우리 집 티브이는 늘 최신식이었다. 조금 나이가 들어 엄마가 더이상 집을 나가지 않게 되었을 때 엄마는 우스갯소리로 집의 가전제품을 바꾸러 집을 나가야겠다고 했고, 가족 모두 웃었지만 나는 화가 났다. 그런 농담 같은 건 싫었다.



 죽고 싶은 날이 잦았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누군가 나를 떠올리며 눈물 짓거나, 내가 없는 빈자리 때문에 이른 나이에 어른이 되는 건 싫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같은 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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