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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08. 2023

우울의 날개



우울의 날개





당신의 부모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정신과를 처음 방문했을 때 의사에게 받은 질문은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았나요."라는 거였다. 거에 부모님이 내게 어떤 평가를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억에서 지워졌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지웠을 거다. 과거의 일 중에 하고 싶은 기억은 별로 없다. 지금 내가 우울한 이유는 부모님 때문이 아니다. 그러니 현재의 이야기를 해보자 말했더니 버지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물었다. 차피 과거의 일을 꺼내야 하는 거였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다. 아니 알코올중독자다. 낮에는 양복을 입은 멀끔한 공무원로, 밤에는 밤늦은 시간 어린 딸을 바깥으로 내몰던 알코올중독자로, 아버지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실향민 홀어머니의 외아들라는 조금 안쓰럽고 뻔한 스토리에 속아 할머니의 넘치는 사랑을 듬뿍 받고도 자식들에게 사랑을 전하지 못하던 모습에도 오히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려 애썼다. 아버지가 자신밖에 모르는 덜 성숙한 어른이라 해도 괜찮았다.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허울 좋은 아버지를 나는 가진 거니까.







 소에는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어서 몰랐지만, 의사에게 아버지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방바닥에 나뒹굴던 소주병과 마른오징어가, 또 그것들을 사러 어두운 골목길을 걷던 꼬마 아이가 떠올랐다. 끔찍했다. 밤늦은 시간 골목길 끝에 있는 슈퍼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간식거리를 사러 온 아이들이거나 술에 잔뜩 취한 아저씨들, 그리고 나뿐이었다. 아버지에게는 어둠이 무섭다고 했지만 밖에서 그 사람들이 다 떠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더 싫었다. 아버지는 남자로서 검정 비닐봉지를 드는 건 체면이 안 서는 일이라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체면 위해 내가 밤길을 나서야 한다고 했지만, 나도 어린 나이에 술병을 드는 일체면이 구겨지지 않았던 건 아니다.



 지난 수년간 아버지를 아무렇지 않게 대해왔는데, 정신과 의사의 질문 하나로 이미 내 우울이 과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과거에 대해 말하는 것, 과거를 떠올리는 것. 일부러 지운 기억을 끄집어내 내 우울을 알아내는 것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언제든 현재에 있고 가끔은 미래를 살고 다. 군가 과거의 리즈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할 때도 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왜 제멋대로 나를 과거로 데리고 간담. 미 과거의 나는 내가 아닌데. 지만 우울은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만성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우울의 날개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날 곳을 고른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할 거다. 어린 딸에게 밤늦은 시간 술심부름을 시키던 아버지, 인이 된 딸에게 밤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냐며 초저녁부터 삼십 분에 한 번씩 전화해서 귀가를 종용던 아버지도 내겐 필요치 않았다. 정신과 의사에게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고, 나는 유년에 아주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때의 기억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내가 조금 '이상한 아이'였다는 말을 하자 단박에 내 상황에 대해 눈치챈 듯했다. 나는 어린 시절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였다. 아버지는 일부러 아버지의 말과 정 반대로 행동하는 내게 '이상한 아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겼랑이라도 하듯 걸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들어댔. 아버지의 말처럼 이상한 아이가 되기로 하고서는 마음이 편해졌다. 니처럼 착해질 마음도 이유도 없었다. 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울은 날개 안으로 고이 접어 넣었다. 겉으로는 완벽히 아무도 볼 수 없게.



 스마트폰이 나온 후 가장 좋았던 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로 벨소리를 바꿀 수 있는 거였다. 전화가 올 때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온다면 나는 기쁘게 전화를 받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내 휴대폰은 거의 무음이었고, 어떤 작은 소리도 용납지 않았다. 전화 벨소리에 자주 놀라고 심장이 내려앉았으니까. 갑자기 울리는 전화 중에 기분 좋은 전화는 별로 없었다. 내 귀가를 종용하거나, 화가 나서 악다구니를 쓰거나, 아프다며 울거나,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해대거나. 그런 상황에 갑자기 놓이게 된 나는 주로 입이 얼어붙어서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 아이들이 훌쩍 큰 이로도 여행 중에 숙소에는 잘 들어갔는지 집착하며 엄마를 시켜 내게 전화를 하곤 했다. 아버지가 진정 원하는 게 나의 안전인지 나를 착한 아이로 길들이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전화를 자주 거절하는 내게 가족들과 지인들은 지금 전화를 할 예정이라는 간단한 톡을 먼저 보내기 시작했다. 한 번에 전화를 받지 않는 이상한 아이가 되어도 좋았다. 최소한 이제 내 의견을 존중해 주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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