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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Oct 05. 2023

prologue_시궁창 같은 마음에 향수를 뿌리면



prologue_궁창 같은 마음에 향수를 뿌리면





잘 울지 못하는 사람




 밝은 척 애써봐도 나는 도무지 밝은 사람이 되질 못했다. 그렇게 애는데도 그렇게 참아왔는데도 도무지 가려지지 않는 어둠. 그건 아무리 향이 짙은 향수를 뿌린대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나만의 채취였다. 그래. 주변의 밝은 빛은 내 그림자를 돋보이게 할 뿐이었다. 래서 울음 대신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을 테고. 나는 조금 더 우울해졌을 테고.







 울고 싶을 때 실컷 울 수 있다면 나는 배우가 될 거다. 그리고 아주 슬픈 영화를 찍겠지. 아마 로맨틱코미디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다. 나는 내 안의 심연의 고통으로부터 나오는 슬픔을 잘 표현해 낼 수 있을 거다. 나는 누구 앞에서 잘 울지 못하는 사람이고 누구에게든 슬픔을 보여주기 싫지만, 만약 내가 배우라면 현실에서는 표현하지 못하는 슬픔을 관객들에게 꼭 보여줘야 한다.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나는 부끄럼없이 잘 해낼 수 있다. 울고 싶은 날에 나는 아주 슬픈 영화를 틀어놓는다. 나는 그 영화의 주인공이 내가 우는 건 영화가 슬프기 때문이다.






세상이 자주 울지 말라해서




 어느 날 지인의 장례식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잘 울지 못하는 나는 울음을 그치는 방법도 알지 못한다. 눈물만큼 정직한 게 또 있을까. 남의 장례식장에서 우는 거 아니라고 주의를 주던 친구의 눈에도 덩달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눈물은 전염성이 있어서 누구에게든 곧잘 옮아간다. 군가의 죽음은 늘 슬프다. 그건 나와 친분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울지 말아야 하지. 망자가 이승에 미련이 남는다면, 살아남은 자가 우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닐 거다. 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망자가분하게 떠날 수 있도록 장례식장에선 슬픔 같은 건 잠시 묻어 야 한다. 겨진 자들이 례식에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면 떠나는 이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이승을 떠나야 하니까. 는 이 시간이 지나면 언제든 울 수 있을 테니까. 늘 슬픔은 마음 한편으로 미뤄 다. 언제든 꺼내기만 하면 되지만, 꺼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언제든 꺼낼 수 있으니 자주 미루게 됐다. 오늘 말고 내일. 내일 말고 글피쯤 꺼내 보기로 했다.



 달리기를 해야 숨 고르기를 배울 수 있고, 토론을 해봐야 논리적인 말솜씨를 갖게 된다. 그리고 많이 울어야 어떻게 울음을 그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자주 울음을 참는 아이는 작은 슬픔에도 울보가 되었 웃을 일이 없는 아이는 자주 히죽히죽 웃다.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봤다. 아무 날도 아닌데 엉엉 소리 내어 울거나 히죽히죽 웃어댔으니까.



 어떻게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 수가 있겠어. 다들 슬프고 힘들지만 꾹 참는 거지. 너만 그런 거 아냐. 힘들지 않은 인생은 없지. 근데, 참 이상하게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삶은 그들의 말과는 정반대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들만 쌓아두고 살 수 있을까. 정말 원하는 건 미루고 미뤄 두지 않던가. 정작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은 잘 알면서 하고 싶은 일은 알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사람의 후각은 늘 같은 냄새엔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채취는 잘 알지 못한다. 세상 웃을 일보다 울 일이 많 나는 잘 울지 않는 사람이다. 는 마음 한편에 물을 한껏 쌓아두었다. 물을 마음에 쌓아두면  마음에서 쾨쾨한 냄새가 난다. 한 냄새가 나는 향이 짙은 향수를 뿌리면 나를 보는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 그러면 된다. 그러면 나도 나를 속일 수 있으니. 일그러진 표정에도 향긋한 냄새가 날 거다. 원래 향긋한 냄새가 났던 것처럼.



 오늘은 조금 울고 싶었는데 눈물이 나오질 않는다. 뻑뻑한 눈은 감아도 아프, 시궁창 같은 마음은 짙은 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다. 나를 속여가며 울 일을 만들어내는데도 이제 지쳤다. 슬픈 영화라고 해도 내내 슬프기만 한 건 아니니 울 때를 기다리다가 울지 못하는 게 다반사다. 제때 나오지 못한 눈물은 갈 곳을 잃는다.



 울어야 할 때만 울어야 한대. 세상이 그래. 언제 울어도 되는지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얼굴은 웃고 눈은 울고. 그냥 아무 때나 울고 싶었어. 평범한 날도, 슬픈 날도, 배가 고프고 잠이 오는 것처럼 말이야. 아무 날도 아닌 오늘 조금 울어 볼게. 마음 안에서 쾨쾨한 냄새를 풍기는 젤 오래된 슬픔을 하나 꺼내 볼게. 이제 향수로 냄새를 덮는 게 아니라 시궁창 같은 마음을 꺼내놓을 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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