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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Jan 27. 2024

#19. 그런 게 핑곗거리가 될 수 있을까



#19. 그런 게 핑곗거리가 될 수 있을까





미신 신봉자




 시험을 코 앞에 둔 수험생의 가족들에게 떨어진다는 말은 금기어이다. 그 기에 가족들은 떨어진다는 말 대신 바닥에 붙었다는 말을 생각해내야 한다. 말 한마디조차 조심하다 보면 차라리 입을 다물고 살아야 맞는 것 같다. 스트레스는 수험생만 받는 건 아니다. 그러고보면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 게 아니라 천년의 원수가 되는 게 빠르다. 우리나라엔 미신이라면 혐오한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대체적으로 그런 미신은 잘 지켜준다. 안 좋다는 걸 굳이 할 필요는 없으니까. 임산부가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음악을 듣는 게 정말로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사실 태교는 엄마의 심리상태가 아주 중요한 일이니 겉으로 보이고 들리는 것들로만 판단하기엔 충분하지 않을 테지만.







 수능 날 아침, 차가 막혀 버스가 정차되었다. 우리 집에는 자가용은커녕 모님이 운전면허증도 없으니 밤새 한숨도 못 잔 무거운 발걸음으로 버스를 타야 했다. 다급한 마음도 잠시였다. 사거리 큰길에는 온통 1톤 트럭의 사고 흔적이었다. 유리파편이 온 거리에 흩어져있었고, 트럭기사는 앞 유리를 뚫고 나와 운전석과 보닛에 반쯤 걸쳐 있었다. 아직 엠뷸런스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 보는 경에 어리둥절했으나 그 트럭기사는 아마 즉사를 한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바쁜 도로는 시간이 멈춘 듯 다. 내 안의 다급함은 이내 사라졌다. 이미 수능을 두 번째 보는 거지만. 다음에 한번 더 봐도 상관없지 않은가. 이미 살아있으므로 그 기회는 앞으로도 많을 테니.



 마음 안의 다급함은 미래의 일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비롯된다. 사람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느라 여유가 없다.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거라면 앞으로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허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텐데. 미래 지향적이라는 건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지만 어쩐지 내게 미래지향적이라는 건 현재의 삶을 방해하는 것 같다.



 결국, 시험 내내 차에 반쯤 걸쳐있던 트럭기사가 생각나서 반푼이처럼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중요한 순간에 내 삶은 언제나 오지 않아야 할 것들이 온다. 쨍하던 날씨가 이어졌던 결혼식날에 소나기가 왔던 것처럼.




 

 이삿날 비가 오면 잘 산대. 결혼식날에도 그렇대.




 비가 오는 걸 좋아하는 낭만은 내겐 없었다. 시를 쓸 때 비는 아주 좋은 소재가 된다. 언젠가 카페에서 멍하니 비가 오는 걸 보며 센티해지는 감정을 느껴봤다면 비가 오는 날 무언가를 하는 게 긍정적일 수 있을 거다. 특히나 감성적인 일을 계획하고 있다면. 언젠가 이삿날 비가 오는 날, 갑자기 퍼붓는 비에 이삿짐 업체 사람들이 이삿날 비가 오면 잘 산다는 말을 했다. 비가 오는 날 이사를 하면 잘 산다고? 정말 그럴까? 그래서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과연 잘 살기 위해서 일부러 비가 온다는 날에 이사나 결혼식을 계획할 수 있을까. 만약 부동산 계약을 염두에 두지 않고 원하는 날에 이사를 할 수 있다면 굳이 비가 오는 날에 이사를 할 사람이 있을까. 만약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 기상청의 예측이 정확하다면 아마 그날은 하고 싶을 거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사 중에 비가 오면 오히려 잘 살 거라고 말하겠지만.



 요즘 수시로 사람이 죽는 꿈을 많이 꾼다. 꿈속에서 나는 늘 대성통곡을 하고 있고. 꿈해몽으로 보자면 사람이 죽는 꿈이나 대성통곡을 하는 꿈은 정말 좋은 꿈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꿈은 꾸고 싶지 않다. 만약 내가 꿀 꿈을 고를 수 있다면 아마 똥통에 빠지는 꿈이나 불에 타 죽는 꿈을 고르진 않겠지. 해몽은 좋지만 기분은 나쁜 그런 꿈이라면. 나중에 억지로 만들어서 좋은 걸로 포장하는 그런 해몽이라면 꾸지 않는 편이 낫다.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해도 내가 싫은 일이라면, 그건 좋은 일이 아닌 게 분명한 일이니. 그래도 여전히 그런 게 핑곗거리가 될 수 있을까. 볼펜이 바닥에 떨어진 거나 바닥에 붙은 거나 결론은 같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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