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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Apr 16. 2024

엇갈린 찰나의 순간

후회라는 감정이 밀려올 때






연인과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들뜬 표정으로 걷던 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저 멀리서 나를 알아본 거다. 슬며시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옆에 내 손을 잡고 있던 친구의 손에도 땀방울이 맺혔다. 친구는 걸음을 멈추려 내 손을 꽉 쥐었고, 잠시 주춤 했다. 그의 곁을 지날 때, 그의 향기가 났다. 여전히 그는 내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친구와 그는 그 길을 걷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유독 서로의 눈에 띄었다. 그들은 아무 일 없이 지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스치듯 잘 지나쳐놓고선 발걸음을 멈춰 서로를 돌아보았다. 나는 끝내 뒤돌아보지 못했다. 그건 바보 같은 일이었다.


유독 향이 짙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주의를 해야 한다. 나처럼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두고두고 그 향기가 나를 괴롭힐 거다. 나는 그 길로 가장 먼저 눈에 띈 미용실로 향했고, 빨강머리가 되었다. 나는 너 없이도 잘 살고 있어. 나는 예전에 네가 알던 그 바보 같은 아이가 아니야.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한참을 그 거리를 배회했지만, 그를 다시 볼순 없었다. 그 후로 한동안 내 머리는 빨강이었고 조금 후회가 되었다. 빨강머리를 했어도 여전히 나는 그가 생각하는 바보 같은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패션을 바꾼다고 세련되지지는 않는다. 책을 들고 있다고 똑똑해지지 않는 것과 같다. 그가 내게 원했던 것처럼 세련되지지 못한 채, 나는 다소 불손해 보이는 빨강머리로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웠다. 이기지 못할 싸움이었다. 이기고 싶은 대상은 곁에 없었다.


그는 내 세상에 살지만, 나는 그의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서로가 서로의 세상에 살때 비로소 인연이 된다. 우리는 다른 시간에 살고 있어서, 만날 수가 없다. 엇갈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지나간 시간의 것들은 지나간 시간에 두어야 한다. 비록 같은 장소에서 만난다 해도, 같은 시간에 무를 수 없다. 마치 첫사랑처럼 말이다. 후회해도 소용없을 감정과 자책으로 내 시간을 채운대도,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생각이 많은 밤. 쓸모없는 생각으로 가득 채운 그 시간도 이미 과거가 되었다. 시간은 늘 일정한 속도로 미래를 향해 달린다. 시간이 잠시 멈춘 것 같은 순간도, 결국 과거가 된다. 그저 찰나의 시간이다. 지금 내 곁을 지나는 수많은 타인은 나와 찰나의 시간만 공유할 뿐, 세상 모든 이가 내 인연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니 자책할 필요 없다. 찰나의 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건 오롯이 나뿐일 테니. 너는 너의 세상에서 행복하면 된다.


당당하게 걷자. 잊고 있던 찰나의 순간에 주눅 들지 말고 세상을 향해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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