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은우는 쉬는 시간에 지수가 동아리 신입생들과 “까르르” 웃으며 즐겁게 떠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 겨우 어색한 인사만 나누고 쭈뼛거리는 자신과 달리, 누구와도 금세 친하게 지내는 지수의 붙임성이 은우에겐 마냥 부러웠습니다.
지수야, 도대체 무슨 재밌는 얘기를 그렇게 하고 있었어? 멀리서 봐도 되게 재밌어 보이던데.
아, 그냥 요즘 동아리 생활이랑 집에서 있었던 일 좀 얘기해 준 거야. 별거 아니야.
별거 없기는. 난 아직도 인사만 하고 도망가기 바쁜데… 그나저나 넌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랑 얘기 좀 나누려면 어떻게 해? 할 말 같은 거 미리 준비해 가?
아니, 난 그렇게 꼼꼼한 사람은 아니야. 게다가 대화할 때마다 따로 준비를 해야 한다면 답답해서 못 살지.
난 꽤 친한 사람이랑 얘기할 땐 그럭저럭 말은 하는데, 조금 아는 사람이랑 얘기할 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심지어 가족이랑 얘기할 때도 가끔은 어색하거나 막막하기도 해.
사실, 나도 그래. 대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망설일 때가 은근 많아. 얘기하다가 갑자기 말문이 막힐 때도 종종 있고. 나도 말을 엄청 잘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근데, 무슨 일이든 어렵게 생각하면 시작하기도 어렵고 계속하기도 힘들잖아. 대화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왕이면 쉬운 대화를 하는 게 좋아 보여.
그러고 보니 인사말이야말로 제일 쉬운 대화구나. 한두 마디 말로 끝나니까. 혹시 그다음으로 쉬운 건 뭐가 있을까?
나는 잡담이 그다음인 것 같아. 가볍고 편하게 떠드는 거. 무겁고 어려운 얘기 꺼내면 갑자기 긴장돼. 죽자고 이기려 드는 토론 분위기 되면 말이 더 막히고.
잡담이라고 하면 대부분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잖아.
주변 이야기 가볍게 하는 게 절대 시간 낭비는 아니야. 유튜브 쇼츠만 봐도 그렇잖아. 다들 거창하고 무거운 얘기보다 그냥 가벼운 거 보면서 웃고 넘기고. 그게 다 우리 일상을 채워 주는 거지. 그리고 사람은 부담 없이 말을 섞을수록 금세 가까워져. 아까 동아리 신입생들이랑 한 얘기도 잡담이었어.
그런데 잡담도 마냥 쉽지만은 않잖아? 어느 정도 말재주나 지식이 필요해 보이던데.
이것저것 아는 게 많으면 좋겠지만, 나는 말솜씨나 아는 게 부족해도 잡담하는 데 거의 문제 없다고 생각해. 그것만 있다면…
그게 뭐야?
상대방에 대한 관심.
관심만 있으면 된다고? 정말?
내 주변에 말 정말 잘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관심 없는 사람이랑은 대화를 잘 못해.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일걸? 상대에게 관심이 없으면 물어보고 싶은 게 딱히 없고, 질문을 받아도 대충 대답하게 돼. 그러면 가벼운 대화도 거의 잘 안 되더라고.
혹시 네가 말하는 관심은 짝사랑이나 깊은 호감 같은 걸 말하는 거야?
에이, 아는 사이에서 갑자기 그런 대단한 마음을 갖긴 어렵지. 내가 말하는 건 상대를 가볍게 살피는 ‘작은 관심’이야. 상대를 무시하지 않고, 너무 무관심하게 대하지도 않는 정도? 그 정도 관심은 친한 사이가 아니라도 충분히 둘 수 있다고 봐.
상대방을 다짜고짜 싫어하지 않기만 해도 충분히 서로 잡담할 수 있단 거네. 근데 내 생각엔 그 정도론 대화하기 부족해 보여. ‘관심을 갖는다’는 말이 여전히 애매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그냥 내 눈에 바로 보이는 상대 모습이나 기분에 눈길을 주고, 그 사람의 요즘 생활 이야기를 슬쩍 궁금해하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상대를 대충 흘려보지 말고, 살짝만 더 자세히 보라는 거네. 그 사람이 요즘 뭐 하면서 사는지 어느 정도 궁금해하라는 거고.
맞아. 그리고 상대의 모습이나 기분을 이야기할 땐 깎아내리는 말만 피하면 돼. “모자 좋아 보이는데 어디서 샀어요?”, “무슨 좋은 일 있나 봐요” 같은 말은 서로 부담도 딱히 없잖아.
“그 옷, 좀 촌스러운데요”, “피부 관리 안 해요?” 같은 말은 하지 말라는 거구나.
재미로라도 그런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생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간단해. “어디 가는 길이에요?”, “강아지랑 산책 가나 보네”, “부모님은 잘 계셔?” 이런 말들 있잖아.
다만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형제들 중에 누가 제일 못해요?”, “버는 돈에 비해 좀 많이 쓰는 거 같은데요” 같이 비교하거나 자존심 긁는 말은 하면 안 돼. 그건 잡담이 아니라 시비 거는 거니까.
비꼬거나 나쁜 말만 아니면 괜찮구나. 이런 대화라면 많이 친하지 않아도 충분히 나눌 만하겠네.
가장 중요한 건 잡담을 직접 하는 것보다 그런 대화를 스스로 하찮게 여기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만 아니라면 그 어떤 대화도 쓸데없지 않으니까.
이왕 말 나온 김에, 우리가 인사 몇 번 하고 조금 알게 된 사이라고 가정하고 연습을 해 보자.
좋아, 먼저 지금 당장 네 눈에 보이는 걸 나에게 말해 봐.
오늘 파란 옷을 입었네요. 파란색 좋아하나 봐요?
제가 딱히 파란색을 좋아하는 건 아닌데, 오늘 시원하게 입고 싶어서 파랑 티셔츠를 골랐어요.
확실히 시원해 보이네요. 바다 느낌도 나고.
아침부터 무척 덥더라고요.
음… 옷처럼 눈에 바로 보이는 것부터 관심을 조금 두고 말하니까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네.
다음은 네 눈에 보이는 상대방 기분에 대해 말해봐.
혹시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으세요? 조금 불편해 보이는 거 같아서…
딱히 기분 나쁜 일이 있는 건 아니고요. 내일 친구 생일인데 무얼 선물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서 그래 보였나 봐요. 별 일은 아니에요.
친구분 취향이 어떤데요? 달달한 거 좋아해요, 두고두고 쓸 수 있는 거 좋아해요?
매일 쓸 수 있는 걸 좋아해요. 괜히 거창한 건 싫어하고요.
그럼 휴대용 가습기나 향 너무 세지 않은 핸드크림 같은 게 쓸 만한데.
핸드크림 괜찮네요. 가격도 무난할 듯!
오호! 상대방 기분에 대해 말하는 게 사실 부담스러웠는데 막상 해보니까 그리 어렵진 않네.
이번엔 상대방의 요즘 생활 차례야. 고고.
다음 달 휴가철인데 어디 가세요? 집에서 쉴 때 보통 뭐 하고 놀아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요새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 있어요?
워워, 진정해! 그렇게 속사포로 물어보면 숨 차는 느낌이 들어. 질문은 하나씩, 대답을 듣고 나서 천천히 이어가야지. 이번 질문은 탈락! 대답은 패스할게. 이번엔 마지막으로 가족에 대한 잡담이야.
가족에 대한 잡담은 좀 부담스러운데, 정말 해도 될까?
너무 깊은 가족 이야기 말고 가족의 모습을 가볍게 말하면 돼. 그냥 적당히 말해봐. 잡담이니까. 예를 들어, 가정에서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부모님 성격이나 집안 분위기는 어떤지 같은 거. 상대방에게 조금만 관심을 두면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어.
음… 우리 집은 아침마다 꼭 같이 식사하는데, 너희 집은 어때?
부모님이 아침에 샐러드랑 빵, 아니면 밥이랑 국을 준비해 두면 각자 먹고 정리해. 사람마다 아침에 나가는 시간이 다르거든.
편하긴 한데 혼자 먹을 때가 많겠네.
대신 저녁에는 가족이 다 같이 먹어서 괜찮아.
오홍.
이렇게만 해도 벌써 잡담이 되잖아. 이런 거 말고도 부모님 성격, 집안 분위기 같은 것도 얘기하려고 하면 말할 게 정말 많아. 상대가 좋아하는 분야를 알면 그걸로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고, 뭘 좋아하는지 모르면 물어 보면 되고. 결국 중요한 건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는 거야.
난 그동안 개인적인 일이나 가족 이야기를 꺼내면 상대가 불편해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내 딴에는 배려였는데 사실은 관심이 부족해서 할 말이 없었던 거였어.
에이,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 물어봐 주면 은근히 좋아해. 자, 그럼 실전 연습 한 번 해볼까? 내 얼굴, 우리 아빠랑 엄마 중 누구를 더 닮았을 것 같아?
엥? 혹시 엄마보다 아빠를 닮은 거야?
궁금하지? 물어보는 데 부담 없지? 가족 이야기나 이런저런 잡담은 은근히 재밌어.
그러고 보니 잡담은 돈도 안 들고, 노력이 많이 들지도 않는, 이래저래 참 좋은 놀이가 되네.
공짜야.
나한테 5년 넘게 알고 지내는 친구가 있는데, 생각해 보니 그 친구 가족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 내가 너무 무심했던 거 같아. 다음에 만나면 이것저것 좀 물어봐야겠어.
좋은 자세네. 다음에 그 친구 만나면 그땐 충분히 이야기하길.
그런데 혹시 너 부모님 사진 있어? 너 진짜 아빠를 닮았니? 한 번만 보여줘 봐.
싫은데~ 내가 왜~
인사가 관계의 문을 여는 일이라면, 잡담은 그 관계를 자라게 해 주는 일입니다. 실제로 잡담은 친구나 연인, 가족 사이를 더 가깝게 붙여주는 접착제 역할을 합니다.
가족관계를 한 번 볼까요? 자녀가 어릴 때는 시시콜콜한 잡담이 많아 부모와 세상 둘도 없는 단짝이 됩니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면 대화에서 잡담은 사라지고 용돈이나 성적 같은 ‘필요한 말’만 남게 됩니다. 대화는 하는데 사이는 오히려 서먹해지는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처럼 잡담은 서로 친하게 지내는 일에 매우 필요합니다. 다행히 잡담에는 거창한 노력이나 준비가 필요 없습니다. 상대를 향한 아주 ‘작은 관심’만 있으면 됩니다. 특히 상대의 마음에 관심을 둘수록 즐겁고 좋은 잡담을 할 수 있습니다.
잡담을 주고받으며 아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면, 이제 한 단계 더 가까운 ‘친한 친구’로 나아갈 차례입니다. 그러려면 무슨 말을 주고받아야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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