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은우는 영화 《아노니마(2021)》를 보며, 문자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은우는 1년이나 지났지만 아직 지수의 연락처를 몰랐습니다. 늘 동아리 단톡방에서만 대화했기 때문입니다. 은우는 지수에게 어떻게 연락처를 물어봐야 할지, 혹시 거절당하면 어떡할지, 연락처를 받게 되면 어떻게 통화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다음 날, 은우는 지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지수야, 네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
내 전화번호? 왜?
그냥… 가끔 연락하려고. 같이 놀고 싶거나 궁금한 게 생길 수도 있잖아.
나는 과제나 일 때문이 아니면 모르는 사람한테는 번호 잘 안 알려 주는데, 너는 친구니까 알려 줄게. 010-7979-4242. 너는?
내 번호는 010-0909-7942.
근데 너, 연락처를 준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
전화해도 괜찮다는 거, 아닌가?
너는 전화 오면 보통 어떻게 해?
하던 일 멈추고 전화부터 받지.
나도 그래. 전화 오면 내가 하던 일보다 통화가 먼저야. 내가 너한테 번호 준다는 건, 네가 전화했을 때 내 시간을 먼저 너한테 쓰겠다는 거야.
와… 거기까진 생각 못 했네. 난 그냥 전화는 받는 게 당연한 거로만 생각했어.
거는 사람은 상대 시간을 강제로 멈춰 세우는 힘을 가진 거나 다름없어. 문자도 마찬가지야. 일단 보내면 상대의 눈길을 뺏어가잖아. 그래서 먼저 연락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훨씬 영향력이 큰 편이야.
듣고 보니 그렇네. 내 번호를 여기저기 막 뿌리는 건, 내 허락 없이 아무나 내 일상에 불쑥불쑥 끼어들게 만드는 거였어.
맞아. 그래서 번호를 달라는 건 가볍게 툭 던질 말이 아니야. 마치 ‘네 방문을 언제든 열 수 있는 열쇠 하나만 복사해 줘’라고 부탁하는 거랑 조금 비슷하달까? 상대가 전화하면 그 즉시 내 집 현관문을 지나, 내 방문도 지나서 나에게 닿으니까.
예전엔 연락처 안 알려 주면 ‘나를 싫어하나?’ 하고 상처받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꽤 쉽지 않은 부탁이었어.
이제 알겠지? 그러니까 거절당해도 너무 상처받지 마. 상대는 그저 사생활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리고 내가 꽤 까다로운 부탁을 했다가 거절당했다면, 상대를 탓하기보다 내 성급함을 먼저 돌아보는 게 좋아. 누구든 거절할 땐 분명 부담을 느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번호를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을까?
사실, 어떻게 말하느냐가 그리 중요한 건 아니야. 언제 말하느냐가 중요하지. ‘서로 아는 친구 정도가 되었을 때’ 이후라면 그냥 번호를 물어보면 돼.
그럼 아직 안 친할 땐 방법이 아예 없나?
연락처는 전화번호만 있는 게 아니야. 그럴 땐 전화번호 대신 ‘아이디’를 물어보면 돼. 카톡이나 인스타, DM(1:1 대화) 같은 거. 이건 전화보다 훨씬 부담이 적거든. 글로 가볍게 시작했다가 더 친해지면 그때 번호로 넘어가도 늦지 않아.
전화 통화는 빼고, 문자로만 연락하는 셈이네. 확실히 문자가 통화보다 부담이 적지. 긴 대화는 어렵지만.
그런데 일이나 과제 때문에 꼭 전화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잘 모르는 사이라도 처음부터 번호를 교환해야겠지.
그럼 아이디는 어떻게 물어봐? 그냥 “아이디 좀” 하면 되나?
에이~ 그건 아니지. 아이디 주는 게 돈 드는 일은 아니지만, 이유는 있어야지. “괜찮으면 카톡으로 가끔 얘기 나눌래?”, “인스타 아이디 알려주면 내가 팔로우할게, 나 스토리 보는 거 좋아하거든”, “카톡 아이디 물어봐도 돼? 약속 잡을 때나 소식 전할 때 필요해서” 이런 식으로 말이야.
다짜고짜 달라고 하지 말고, ‘얘기하고 싶다’는 의도를 보여 주라는 거구나.
그 정도 성의만 갖춰도 대부분은 기분 좋게 알려줄 거야. 아마 너도 나도 그럴 거고.
예전엔 말 잘하고 성격 좋고 얼굴까지 잘생긴 사람만 연락처를 받는 줄 알았는데, 나름 필요한 과정이 있었구나.
특별한 매력이 있는 사람은 아직 많이 안 친해도 연락처를 쉽게 주고받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경우는 남자든 여자든 거의 없어. 우린 현실을 살아야지?
아이디를 주고받는 것도 내키지 않을 땐 어떻게 하지?
모르는 사람이나 조금 아는 사람이 다짜고짜 연락처나 아이디 달라고 하면 참 곤란하지. 거절하려고 거짓말할 때도 있고. 근데 거짓말을 하면 나중에 더 복잡해지니까, “부담스럽네요, 미안해요”처럼 담담하게 말하는 게 그나마 낫더라.
맞아, 물어본 사람도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겠지. 근데 상대가 부담을 크게 느꼈다면… 어쩔 수 없지 뭐. 사람 사이가 내 마음대로만은 안 되니까. 그런데 나 그냥 네 연락처 한 번 물어봤을 뿐인데, 왜 이런 말들을 잔뜩 들어야 하는 건지…
네가 나중에 다른 여자들한테 전화번호 막 물어보다가 미움받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 다 너를 위해서야.
고… 고맙다. 그런데 연락처를 받아도 문제가 있어.
뭔데?
전화로 이야기하고 싶은데, 딱히 할 말이 안 떠오를 땐 어떻게 해?
그럴 땐 안부가 제일 무난해.
안부라면 잘 지내는지 묻는 거?
응. “요즘 잘 지내니?”, “오늘 하루 어땠어?” 같은 인사.
쉽고 간단하긴 한데, 좀 형식적이지 않아?
형식적인 대화가 맞긴 해. 그런데 괜히 그런 방식을 사람들이 많이 쓰는 게 아니야. 서로 말을 주고받으려면, 상대에게 관심 갖는 게 중요하다고 전에 말했잖아. 안부를 묻는 건 그런 관심을 보여 주는 좋은 방법이야.
안부를 쓸데없는 형식적인 일로 여기지 말라는 거구나?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서로 기계적이고 따분하게만 생각하면 실패한 대화가 되겠지. 안부처럼 간단한 이야기라도 서로 기분 좋게 여기면 충분히 쓸 만한 대화가 되는 거고. 안 그래?
그러면 안부를 주고받다가 잡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 가면 좋겠네.
응. 다만 통화가 너무 길어지면 상대 시간을 많이 뺏으니까, 적당히 이야기해야겠지.
난 그동안 약속 있거나 특별한 일 있을 때만 전화를 걸었는데, 별일 없을 때는 안부를 이유로 전화하면 되겠구나.
안부 전화가 여전히 부담되면 문자 메시지나 개인톡도 좋아.
그건 그래.
문자는 실시간 대화가 아니니까 좀 여유가 있지. 천천히 생각하고 보내도 되고. 근데 한 번 보내면 상대는 좋든 싫든 보게 되잖아. 말하듯이 보내도 예의는 챙겨야지.
그래서 광고 메시지가 문자로 많이 오는 거구나. 보내기만 하면 상대가 일단 광고를 보게 되니까.
얼마 전에 아는 친구가 장난이라고 욕이 섞인 문자를 보냈어. 본인은 웃자고 한 거겠지만, 난 전혀 보고 싶지 않은 글을 억지로 읽게 돼서 몹시 불쾌했어. 그래서 결국 차단했지.
문자는 쓰기 쉬워서 관계에 도움이 많이 되지만, 잘못 쓰면 순식간에 망치기도 하네.
문자 메시지 자체가 잘못인 건 아니고, 쓰는 사람이 문제지. 잘 쓰면 당연히 꽤 좋아. 대화가 끝나고 못다 한 말을 문자로 마무리하면 좋더라고. 말실수한 게 있었다면 문자로 사과하는 것도 괜찮고.
나도 가벼운 사과는 문자로 하는 게 훨씬 좋더라. 상대도 덜 부담스러워하고.
요즘은 글씨체나 이모티콘 덕분에 문자 쓰는 재미가 있어. 예쁘게 만들기도 편해.
확실히 글을 예쁘게 꾸미는 도구가 요즘 많아. 그런데 글은 사람의 생각이 드러나는 거고, 사람 생각을 좋게 만들어 주는 도구는 없다는 게 문제야.
생각이 삐뚤어졌다면 아무리 꾸밀 게 많아도 좋은 글로 나오진 않겠지. 결국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말하고 글 쓰는 실력에 중요한 거 같아.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좋은 마음으로 살 수 있으려나?
도움이 되겠지만, 독서만으로는 부족하지. 자기 마음이 어두워지지 않으려면 아무래도 사랑이 필요해. 난 그래서 영상 볼 때도 가급적이면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고 힘이 돼 주는, 그런 훈훈한 콘텐츠를 자주 챙겨 봐.
(쓱쓱쓱쓱) 방금 너한테 문자 보냈어.
‘지수 바보?’ 차단당하기 싫으면 다시 보내.
(쓱쓱쓱쓱) 다시 보냈어.
‘그레이트 울트라 미녀 지수님?’ 이제야 제대로 됐네. 근데 이거 왜 보낸 거야? 이게 무슨 안부 문자야?
밑으로 쭉 내려가면 내용이 더 있어.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 년에 한 바퀴를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아잇! 이게 뭐야!
안부 연락은 상대의 근황을 묻는 동시에 나의 존재를 알리는 쉽고 좋은 대화가 됩니다. 그저 학교나 직장에서 별일은 없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가볍게 묻는 것만으로도 친구와 동료 사이가 돈독해집니다.
그리고 잊지 마세요. 글과 말은 결국 내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찌푸려진 마음에서는 찌푸린 말이, 다정한 마음에서는 향기로운 말이 나옵니다. 즐거운 통화와 기분 좋은 문자 연락을 바란다면 일단 내 마음이 삐뚤어지지 않도록 가급적 좋은 것을 자주 보고 사랑을 가까이하세요.
연락을 주고받는 일은 친한 친구 사이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그 외에도 다른 일이 필요합니다. 또 무엇을 주고받으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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