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쓸모 -철학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2020 09 24
철학을 모른다 하여 일상에 불편은 없다. 철학을 모른다 하여 힘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철학을 몰라도 잘 산다. 지난 시간, 한국의 많은 철학과가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한국은 그런대로 잘 있다. 누구도 철학과가 사라졌다 하여 아파하지 않는다. 슬퍼하지 않는 죽음이 이 땅 철학과의 죽음이다. 왜일까? 내가 20대를 보낸 철학과도 죽었다. 타살인지 자살인지 모르겠다. 돈이 되지 않으니 죽이고 돈이 되는 학과가 대학에 등장했다. 그렇게 보면 철학은 자본 사회에 의하여 타살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만도 않다. 그 죽음에 누구도 아파하지 않는다. 민중에게! 우리에게! 철학은 아무 쓸모없는 그 무엇이었다. 그러니 죽어도 아파하지 않는다. 죽어도 아파하지 않는 그런 쓸데없는 것을 자본은 그냥 죽여 버린 것이다. 이미 죽어 있는 것을 자본이 그 시체를 치워버린 꼴이다.
대학의 철학과는 이미 죽었다. 그냥 죽은 시체에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이런저런 애를 쓰지만 우리에게 대학의 철학과는 이미 죽은 시체다. 사라져도 그만이다. 교수들이 쓴 책들이 그저 삶에 여유를 즐기는 기호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삶에 어떤 의미를 기대하며 철학을 접하는 이들은 많지 않고 있다 해도 곧 실망한다. 이 땅의 대학은 그런 철학을 준비할 시간을 그냥 날려버렸다. 그리고 시체로 대학이란 공간 속에 박제되어 있을 뿐이다.
철학을 모르는 민중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철학이 민중의 삶에서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삶을 두고 이야기한다면 아무리 힘겨운 말의 책이라도 읽을 것이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철학은 그렇지 않다. 그냥 죽어간다. 살아있던 적도 없으니 기억하는 이도 없고 죽어도 죽은 줄도 모른다. 그것이 이 땅의 철학과다.
철학과의 죽음 앞에서 이 땅의 철학의 모습을 본다. 그 비워진 자리에 철학의 자리라 생각하며 말이다.
선덕 여왕의 묘를 찾아 그 옆에 앉아본다. 책도 읽고 이런저런 글들도 읽은 선덕이지만 막상 그 마지막 쉼의 자리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그의 시신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 중요하지 않다. 이제 그는 역사의 순간 자신의 일을 다 마치고 그냥 그렇게 쉬고 있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만 힘든 길을 찾아와 사진 몇 장을 찍어가는 정도다. 철학은 지금 이 선덕 여왕의 묘만큼이라도 우리 삶에 가치가 있을까... 선진국이란 곳에 철학과가 있으니 그냥 만들어 유지하는 송장... 살아있지 않은 철학...
그 처지를 아는 것에서 어쩌면 우리를 위한 철학은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