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9 27
내가 무엇인가에 다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는 사람이다. 내가 사람이란 사실에 지금 내 앞에 작은 허브도 그리고 내 손에 연필도 지우개도 그리고 메모장도 심지어 친구도 어떤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나는 그들 없이도 생물학적으로 너무나 당연히 사람으로 있을 것이다. 무인도에 사서 살아도 나는 사람이다. 사람이란 실체적 본질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유지되고 지속된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언제 있는지 무엇을 가지고 누구와 있는지 내가 어떤 기분으로 어떤 일을 하며 당하는지 이 모든 것들과 무관하게 나는 사람이다. 굳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 이론을 가져오면 나의 공간, 시간, 행위 등등 모든 것은 나의 사람됨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이러한 것들은 나의 사람됨에 의지해 있다. 사람인 '나'가 없다면, 나의 공간과 시간 그리고 행위 들어 어떻게 있겠는가 말이다. 내가 무엇인가, 나의 실체적 본질은 이렇게 철저하게 홀로 자존할 수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현실을 살아가는 내가 누구인가의 문제는 다르다. 내가 누구인가? 이 물음에 사람이라 답하진 않을 것이다. 나의 자녀는 아빠라고 할 것이다. 나의 벗은 벗이라 할 것이고, 아내는 남편이라 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이와 같이 나의 주변, 나와 더불어 있는 나의 곁을 무시할 수 없다.
자녀로 인하여 나는 아버지로 있다. 사랑하는 이에 의하여 나는 사랑하는 이로 있다. 그렇게 더불어 있는 것은 나의 실체적 본질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매우 큰 힘으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나는 무엇으로 이 현실을 살지 않고 항상 누구로 이 현실을 산다. 사람으로 현실 살기보다 아빠로 벗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현실을 산다. 내가 처한 그 자리에서 나와 더불어 있는 이에 의하여 나는 누구가 된다.
나의 행복은 사람으로 누리는 행복이라기보다는 사실 아빠로 벗으로 행복을 누린다. 나의 글을 읽는 이를 만났을 때, 나의 글로 더불어 있게 된 이로 인하여 행복하게 된다. 그저 글을 쓴다는 행복도 있겠지만 정말 큰 행복은 글로 더불어 있게 되었다는 것과 그에게 뜻이 전달되어 그에게 내가 녹아들어 갔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이다.
더불어 있는 것 없어도 나는 사람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더불어 있는 것으로 나는 누구가 된다. 신과 더불어 한 사람의 신앙인이 되고, 사랑하는 이와 더불어 사랑하는 이가 되고 말이다.
더불어 있는 것에 고마움을 전한다. 누구로 있는 나에게 녹아들어 와 내 존재의 조각이 되어 주니 말이다.
2020 09 27
유대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