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아야 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by 유대칠 자까

루카복음 11,27-2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하고 어떤 봉사를 한다 하여 그가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로 인하여 행복한 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많은 정치인들 가운데 무척이나 이기적인 사람들 상당수가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이야기와는 너무나 멀리 살아갑니다. 종종 자신의 성공적인 삶을 하느님의 덕이라 자랑하는 이들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보면 참 이기적인 부자일 뿐 다른 것이 보이진 않을 때가 참 많습니다. 살아가면서 다른 경우도 그러하지만 특히나 신앙은 그러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아야 할 것은 정말 다른 것 같습니다. 보이는 것은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입니다. 종종 신앙을 가진 권력자이고 종종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한 부자이기도 합니다. 그 권력과 부유함의 덕인지 종종 성당과 교회에서 제법 높은 자리에서 봉사를 하기도 합니다. 회장이나 장로와 같이 말입니다. 심지어 크고 화려한 교회의 목회자이기도 하고, 높은 자리에 성직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이는 그 화려함과 높음이 보아야 할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참으로 실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신앙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아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보아야 할 신앙의 모습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감을 행복이라 여기는 이들입니다. 예수의 삶을 봅니다. 그의 사랑은 계산기를 들고 다가가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대로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명마저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우린 부자가 되지 못할지 모릅니다. 자기 것을 챙기지 못하는 바보로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바보 같은 삶도 행복이라도 웃을 수 있는 것이 신앙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생각만 해도 얼마나 행복하고 복된 자리입니까. 그러나 예수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언합니다. 보이는 것이 모두는 아니란 말입니다. 신부라도 목사라도 수도자라도 그의 삶은 보이는 것과 보아야 할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성스러움의 자리지만, 막상 신앙의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은 그 화려함에 가려진 추악한 아집일 때도 있으니 말입니다.

나를 볼 때에도 나의 가난이 보아야 할 나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은 아닐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 자본의 눈으로 보면 힘없고 때론 바보 같아도 홀로 누리며 살아감보다 더불어 누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위해 애쓰는 나라면, 그렇게 하느님 앞에서도 당당한 나이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면, 나는 매우 충실하게 그리고 당당히 행복을 위해 애쓰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보이는 나보다 보아야 할 나의 모습에 당당한 그런 사람을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


2020 10 10

유대칠 암브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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