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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Apr 20. 2024

나희덕의 '소리들' 읽기

유대칠의 시 읽기 (유대칠의 슬기네 집)

소리들

나희덕     


승부역에 가면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구름 옮겨가는 소리

지붕이 지붕에게 중얼거리는 소리

그 소리에 뒤척이는 길 위로

모녀가 손 잡고 마을을 내려오는 소리

발 밑의 흙이 자글거리는 소리

계곡물이 얼음장 건드리며 가는 소리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아지

다시 고개 돌리고 여물 되새기는 소리

마른 꽃대들 싸그락거리는 소리     


소리들만 이야기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겨울 승부역

소리들로 하염없이 붐비는     


고요도 세 평     


유대칠의 어설픈 주관적 감상문     


“고요도 세 평” 공간이라도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은 아니다. 들리지 않는 소리로 가득한 공간일 수 있다. 들리지 않은 소리란 수식하는 말과 수식받는 말의 모순 속이 일어나는 공간일 수 있다. 소리란 들리는 이에게 들릴 때 소리가 된다. 들리지 않으면 소리는 소리가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소리란 들리는 이에게 들릴 때 그때 소리가 된다.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구름 옮겨가는 소리”도 “지붕이 지붕에게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소리가 아니다. 물론 “모녀가 손 잡고 마을을 내려오는 소리”도 “발 밑의 흙이 자글거리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물론 들리는 소리도 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아지 다시 고개 돌리고 여물 되새기는 소리”와 “마른 꽃대들 싸그락거리는 소리”는 집중해 들으면 들릴지 모를 소리, 이런 소리도 고요 속에 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 “소리들로 하염없이 붐비는” 고요를 가득 채우는 소리를 듣는 마음이라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고요 속 가득한 소리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소리다. 아니,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소리다. 아무렇지 않게 지날 때 들리지 않아도 발밑의 흙, 그 존재를 깨우치는 순간, 우린 그 소리를 듣게 된다. 구름이 옮겨가는 걸 모르고 사는 이에겐 들리지 않지만, 그 모습을 보며 그 존재를 깨우치고 있는 이에겐 그 존재의 소리, 그 역동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렇게 내 밖 존재들의 그 존재, 그 있음의 애씀을 마주하고 깨우치는 순간, 서로 인사하며 그들의 소리를 듣게 된다. 말없이 소리 없이 고요 속에 진동하는 그 소리를 말이다. 


내 밖의 존재,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너무나 쉽게 듣는 건 내 욕심이 나를 향하여 던지는 소리다. 그 소리 하나에 의지하는 삶은 참 외롭다. 그러나 내 밖 저 많고 많은 소리를 들으며 서로 인사하며 살아가는 순간, 고요한 삶으로 보이는 내 삶은 수많은 소리로 가득한 삶, 수많은 대화가 쉼 없이 이어가는 삶이 된다. “소리들로 하염없이 붐비는” 더불어 사는 삶이 된다. 참 다행히도 말이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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