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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Apr 04. 2024

나희덕의 '금붕어' 읽기

유대칠의 시 읽기 (유대칠의 슬기네 집)

금붕어

나희덕      


어느날 김선생의 책상이 치워졌다 

내 책상 위, 좁은 어항 탓인지 

금붕어가 자꾸 죽었다     


쉬는 시간마다 물을 갈아주고 

청정제에 풀잎까지 넣어주었는데 

숨이 부족해 결국 떠오르고 만 금붕어 한 마리     


교무실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어서인지

오가며 자꾸 눈길이 가는구먼,

사랑도 많이 받았던 그 금붕어     


좁은 어항 속 말 못하는 금붕어라도

제 지느러미 날개 치듯 펼 줄 알던

그 살아 있음을 우리는 부러워했던 것일까    

 

물이 더러워질까봐 그걸 건져내다가 

문득 그의 빈 자리를 건너다본다     


떠오른 물고기를 건져내다보면 

그의 빈 책상을 건너다보면 

나는 침묵 속에 점점 배가 불러온다 

더이상 떠오를 수 없도록, 

자꾸 무거워진다     


유대칠의 어설픈 주관적 감상문     


난 한때 강사였다. “어느날 김선생의 책상이 치워졌다.” 그의 자리가 치워진 거다. 조용히 주는 것만 받아먹어야 하는 어항 속 세상에서 강을 꿈꾸는 이는 자유를 향해 소리친다. 강을 향한 그리움은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는 건 어쩔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분노는 어항의 세상을 유지함으로 많은 걸 누리는 이들에겐 제거되어야 하는 이유다. 어항 속은 그리움에 답답해 하며 죽어가지만, 어항 밖 어항의 세상은 버려진다.      


“쉬는 시간마다 물을 갈아주고 청정제에 풀잎까지 넣어주었는데 숨이 부족해 결국 떠오르고 만 금붕어 한 마리”, 사실 이 모든 애씀도 강을 그리워하는 강의 존재에겐 제대로 된 치유제가 아니다. 결국은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어항에서 물고기는 자유 없이 생명조차 구금된 채로 살다 죽는다. 교무실 가득 그 많은 선생이 있어도 사실 “교무실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다. 강을 그리워하며 어항의 삶을 슬퍼하는 존재, 그런 존재는 금붕어뿐이다. 그러니 스스로 주는 대로 받아먹는 어항 속 구금의 삶에서 서열을 결정하며 살아서 죽어 있는 이들에게 그 작은 어항의 금붕어, 그 금붕어는 교무실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존재다.     


아무리 “좁은 어항 속 말 못 하는 금붕어라도 제 지느러미 날개 치듯 펼 줄 알던 그 살아 있음을 우리는 부러워했던 것일까.” 나 여기 아직 살아 있다는 외침의 몸짓조차 없이 살던 우리다. 세상은 원래 어항 속 세상이며 주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억울하고 부당한 구조를 향한 분노는 철 모르는 이들의 버려야 할 관념이라 배웠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만 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 본연의 강을 향한 그리움은 허락되지 않았고, 그저 말 잘 듣는 기계로 살아야 하는 우울한 물체가 당연한 삶이라 강요되었다. 부모로부터, 권력으로부터, 내 목숨으로 살아간 그 욕심으로부터, 주입된 차가운 독약이 유일한 생명줄이 되어 버린 존재에게 금붕어의 그 작디작은 날갯짓조차 부러움의 그 무엇이다. 어쩌면 그런 부러움도 없는 더 차가운 물체로만 있게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사랑도 많이 받았던 그 금붕어”는 정말 사랑받은 걸까? 어쩌면 거짓을 진실로 믿고 살아야만 하는 우리에게 금붕어는 철학자가 되어 우리에게 진실의 세상을 향한 날갯짓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날갯짓은 어항을 더럽힌다. 순종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흔들기에. “물이 더러워질까봐 그걸 건져내다가 문득 그의 빈 자리를 건너다본다.” 부당하다 소리치며 강의 그리움에 살던 김선생의 자리를 바라본다. 그 빈자리에서 찾아오는 감정은 더불어 분노하는 날갯짓이 아닌 두려움이다. 나는 버려지지 말아야지! “떠오른 물고기를 건져내다보면 그의 빈 책상을 건너다보면”서 다짐한다. 나는 절대 죽지 말아야지. 아니, 나는 이 어항 밖 어항에서 버려지지 말아야지. 나는 더 철저하게 이 어항에 붙어있어야지. 주는 대로 최대한 많이 받아먹어 배를 풀려야지. “침묵 속에 점점 배가 불러”오게 살아야지. “더이상 떠오를 수 없도록” 살아야지! “자꾸 무거워”지는 나를 보며, 강을 향한 그리움 없이 철저하게 침묵하며 날갯짓 없이 사는 금붕어가 되어야지 다짐한다. 나도 한때 강사였다. 나의 빈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에겐 배를 불리는 자리가 되었을지 모른다. 더 단단히 어항에 자신을 묶을 수 있는 자리가 되었을지 모른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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