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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Aug 23. 2023

치통

치통이 시작됐다. 극심한 통증에 이가 달달 떨린다. 씹을 때뿐 아니라 가만히 있을 때에도 통증이 파도 듯 끊임없이 밀려온다. 신경이 누르고 찌르는 듯하다. 잠도 못 자고 진통제도 소용없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오른쪽 얼굴에 열이 올라 뜨거워졌다. 욱신거린다는 흔한 말로는 너무나 부족한 거대한 통증이 안면을 강타했다. 이를 뽑아버리고 싶은 심경이지만 이미 어금니 하나를 잃어버렸다. 병원 예약을 잡고 인터넷을 뒤지며 밤새 통증의 원인을 검색했다. 다양한 추측이 난무했고 어느 것 하나 안심 되는 말은 없었다.    

  

하루 이만 보를 걷기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다. 보건소에서 인바디와 당뇨 검사를 했는데, 공복혈당이 104에서 91로, 비만에서 경도비만으로, 내장지방레벨이 10에서 8로 탈바꿈했다. 생각보다 이른 변화에, 축배를 터뜨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기쁘고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최근 건강다이어트 책과 유튜브를 많이 봤다. PPL 스러운 정보의 홍수 중 와닿는 딱 한 가지가 있었다. 몸이 변하려면 끊임없이 강한 자극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 했던 아인슈타인의 말과 비슷하다. 실패했던 이전들과 완전히 다른, 무리하고도 무모한 도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 보도 버거운 내가 이만 보 걷기를 시작했다. 귀찮음을 뚫고 중력을 거슬러 엉덩이를 뗄 때마다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평생 지낸 이 지긋지긋한 몸을 벗어나 이제야 건강한 몸을 갖게 되는 것인가, 기대에 차올랐다.   


차례 신경치료를 진행했는데도 막혔다는 신경관을 찾는데 실패했다. 솔직하게도 의사 선생님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으니, 여기보다 더 실력 좋고 장비가 뛰어난 곳으로 가라고 하셨다. 겁 많은 내가 치통에 시달리면서도 곧 끝나겠지 하며 간신히 참았는데, 고통무한루프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장애물에 부딪혔다. 치아가 내 발목을 잡다니...나만 왜... 경험해보지 못한 통증은 불평과 보류와 포기를 선동질했다. 운동도 않고 막 먹어대고 종일 넷플릭스, 유튜브 보다 그대로 누워 자고 싶다. 평생 입어도 충분한 옷을 놔두고 또 쇼핑하고 싶다. 먹구름 속에서 다시 예전처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태풍 카논이 온 날, 어금니 두 개를 신경치료하고 임시치아를 씌우는 시간 반에 걸친 대수술을 했다. ‘이겨내는 용기'라는 책에서 복서인 ‘허리케인 카터’는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무려 19년을 복역했다고 한다. 출소 후 고소나 항소를 하지 않았고, 그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았다. 그는 "누구도 나를 망가뜨리지 못한다. 어떤 불의도 나에게서 그 무엇도 빼앗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마치 태풍 이름 같은 허리케인 카터를 생각하며 계속 걸었다. 맥없이 꺾여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뛰어넘으며 아픈 턱을 감싼 채 빗줄기를 뚫고, 결국 오늘도 이만 보를 걸었다.      


회복하려는 사람을 막을 수 있는 병은 없다.

일어서려는 사람을 주저앉힐 수 있는 힘은 없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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