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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Mar 01. 2024

영화 '릴리와 찌르레기'

리사 카시가 나오는 영화를 연달아서 봤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코믹액션영화계 톰크루즈 같은 그녀를 너무 좋아한다. 특히 '스파이'란 영화는 우울할 때 그만이다. 곧 끊어야지 끊어야지 노래 부르며 계속 구독하는 넷플릭스에서 그녀가 나오는 '썬더포스' '릴리와 찌르레기' 두 편의 영화를 봤다.  두 번째 영화가 참 좋았다. 사고로 딸을 잃고 우울증에 걸려 입원한 남편을 둔 여자의 이야기였다.


지겹게 반복되는  일상이고 아물지 않는 슬픔이지만 결국 버티고 희망을 갖고 소통하며 치유하는 것을 보았다. 꼭 말로만 사람과만 소통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아주 자그마한 찌르레기 새 한 마리가 릴리의 정원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은 후 부리로 릴리를 위협하고 공격했다. 릴리는 찌르레기를 없애려 약도 치고 돌도 던지고 해 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헬맷을 쓰고 정원에 나가 텃밭을 가꾼다. 통제하거나 바꿀 수 없는 냉혹한 현실 속 릴리와, 고군분투하는 남편과 나, 그리고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영화 속 릴리의 남편도 밝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와르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우울했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생기던 균열이 딸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쓰나미에  둑이 터지듯 터져버렸다. 그는 도저히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부정적인 예측을 확신으로 굳힌다. 진료도 거부하고 상담에서도 말문을 닫아버린다.


남편에게 가장 화가 났던 부분이 자꾸 정신과에 의존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물론 상담이 도움이 될 테지만 약을 먹으면 세상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구는 게 실망스러웠다. 스스로 일어설 생각 보다 의존하거나 끌려가는 모습이 거기에서도 보여 못마땅했다. 외부자극자주 휘둘리는 나와 비슷해서 싫었다. 그리고 나는 내 결혼이, 내가 선택한 배우자가 거기까지 무너질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믿고 싶지 않았다. 물론 살다보면 아플 수도 있고, 우울할 수도, 퇴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다른 남편들처럼 퇴사하고  달 정도  다음에는 재충전해서 다시 일을 찾는다... 주변에서 들리는 대부분의 퇴사스토리가 그렇지 않은가. 다행히도 경력을 인정받아서 더 좋은 곳으로 갔다는 뭐 그런 이야기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다시 전처럼 성실한 삶을 이어나가기를, 안정되고 순탄하게 삶을 이어가기를 바랐다. 기대한 게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그마저도 깨진 것이다. 여행이라도 다녀오라 권유하면  추워서 안되고 잠자리가 불편해서 안되고  자격증 공부를 해보라 하면 일을 못하게 막는다 하고, 일도 조금 알아보더니 여긴 하던 일과 달라서 안되고 여긴 직원이 적어안된단다.


결국에 나는 대화도 안 통하고 계획 세울 줄도 리드할 줄도 모르고 멍청한 데다가 겁도 많고 아무것도 혼자서는 할 줄 모르는 데다 이제는 아프고 백수에다가 우울증까지 얹은 남편과 결혼한 것이다. 차곡차곡 그런 것들이 쌓였다. 한두 개 정도의 타이틀이면 뭐 괜찮아, 다른 좋은 장점이 있잖아라고 겠지만 한계에 부딪힌 거 같다. 신혼 때부터 시엄마는 늘 아파서 자주 달려가야 했고 늘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들어주고 위로하고 분위기를 업시켜줘 하는데 이제는 파킨슨병에 걸리셨다. 남편도 결혼하고 얼마 안 있어 암에 걸린 것도 모자라  간병을 다하고 짜증을 다 받아준 내게 복직  계속 일하면 자살할 거 같다고 해서 관두라 했더니 더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버렸다.


아무래도 전생에 앞장서서 나라를 두어 번 팔아먹은 거 같다. 이혼하고 싶다 말하니 남편도 미안하다며 정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걸 그대로 받는 게 내 인생을 위해서 백번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남편이 우울이고 지랄이고간에 정신 차리고 그래도 내가 믿고 의지했던 예전 그 어느 때의 듬직한 모습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남편은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다 말한다. 그걸 알면서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답을 몰라도 맨몸으로 부딪치면서 버티고 헤쳐나갈 뿐이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는 그냥 결정하면 된다. 우유부단함도 중병이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무지가 아니라 포기와 선택에 관련된 문제일 뿐이. 아무것도 포기하거나 잃고 싶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길 두려워하는 사람은 늘 모르고 망설이게 된다.


시엄마가 아프단 연락에 남편은 시댁에 가고 오랜만에 집에 혼자 남았다. 침대 위에 급하게 나가면서 내동댕이쳐진 남편의 노트를 보았다. 출장 가서열심히 공부하고 메모 한 흔적이 있다. 최근에 내가 선물해 준 책(멘털을 회복하는 법)을 보면서 많이 끄적거렸다. 언젠가 사무실 직원이 너무 일을 못해 자르려고 했는데, 자리에 엑셀책이 꽂혀 있는 걸 보고 마음을 고쳐먹고 예쁘게 보게 되었다는 팀장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또박또박 적어 내려 간 걸 보니 남편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알겠다.


이혼이 두렵거나 대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변했고 나도 잘못했다. 체력이 약해 짜증과 화가 많았다. 의존했고 기대가 많은 만큼 실망도 많았는데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존중이 사라졌다. 시댁과의 관계도 너무 굽히고 들어갔다. 그게 나의 성질과 맞지 않는 부분이라는 걸 이제는 안.


나는  나아가고 싶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서망설이고 멈추고 뒤만 바라보는 사람과는 살고 싶지 않다. 남편에게 계속 후회하고 우울해하며 만 볼 것인지 아니면 이를 악물고 나아갈 것인지 물어봐야겠. 왠만하면 릴리와 찌르레기처럼 같이가자.


나도 변해야 한다. 모든 문제는 체력과 욕심 때문이다. 열정을 다 바쳐 일하고 지쳐서 집에 돌아와 사달이 난다. 뭐든지 할 수 있는 체력을 만들어야 된다. 직장에서 눈치 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 물론 눈치 주는 사람이 있으니 보는 거지만, 오케이 알겠어요~ 죄송해요~ 하고 씩 웃으면 된다. 배울 것만 쏙쏙 배워서 가자. 가이드라인은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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