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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북스 김희영 Jun 30. 2023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아보렴

25살까지는 엄마가 지원해 줄게

나는 부자가 되고 싶은 명확한 이유가 있다. 여러 이유 중 상위를 차지하는 것은 단연 아이를 위해서다. 아이를 위해서 '부자'가 되고 싶다. 적어도 어떤 것을 선택함에 있어 '돈 때문에...'라는 이유로 망설이고 싶지 않다.



아이가 미술을 좋아한다. 지금은 그저 집에서 끄적이며 그리는 수준이다. 언젠가 아이가 '미술이 배우고 싶어요'라고 말을 할 때 수강료가 절대 기준이 아닌 좋은 시설과 시스템을 갖춘 곳을 골라서 보내고 싶다. 미술 전시회가 있으면 전국 어디든 찾아다니고, 해외의 유명한 미술관도 데려가고 싶다. 



우리 아이는 한국나이로 6세인 지금까지 기관에 다니지 않는다. 집에서 홈스쿨을 하고 있다. 말이 홈스쿨이지 아직은 무학습을 지향하는 나의 철학으로 그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스스로 놀이하며 배운다. 옆집 아이는 영어유치원에 다닌다고 한다. 영어교육도시가 근처에 있어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쉽게 만난다. 



어느 날, 우리 아이와 옆집 아이가 놀면서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했다. 완벽한 문장이 아니더라도 아이는 영어를 내뱉는 것에 거침이 없다. 하루에 30분씩 영어 만화영화를 보고 있는데, 그것이 효과가 있었나 보다. 영어유치원에서 원어민에게 배우는 친구와 비슷한 수준이라니!



영어유치원은 교육비가 얼마인지 궁금했다. 월 2~300 수준이라고 한다. 영어를 가르치기 위함도 있지만 유치원의 시설이 어마어마하게 좋다고 옆집 엄마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런 것들을 누리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보낼만하다고 한다. 아... 월 2~300이요? 직장 다닐 때의 나의 월급보다 많다.



지금은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것보다 엄마아빠와 있는 것이 좋다고 하여 홈스쿨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가 '나도 국제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또는 '저 유학 가고 싶어요'라고 말을 하게 된다면 적어도 돈이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 아이의 관심사, 목표와 비전, 부모의 교육 철학, 선택의 장단점 등을 골고루 비교하여 정하고 싶다. '돈 없어'라는 말 한마디로, 또는 어쩔 수 없는 집안의 사정으로 아이의 고민과 선택을 일축하고 싶지 않다.



예전에 자녀의 경제교육 관련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대부분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경제적 지원을 끊고 독립을 시키겠다고 했다. 자립심을 일찍 키워주고 싶다고 했다. 나만 25살까지는 지원을 해주겠다고 한 것 같다. 지원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25살까지 2억 원을 모아서 아이에게 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나의 목표는 아이가 25살이 될 때까지 모든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25살이 되는 해에 2억 원을 주는 것이다.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 돈을 종잣돈으로 투자를 하든, 사업에 도전을 하든, 유학을 가든. 또는 외제차나 명품을 사든, 게임 아이템비로 탕진을 하든, 여가와 유흥으로 모두 써버리든. 그 어떤 것이든 아이에게는 인생 공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이왕이면 좋은 방향으로 쓸 수 있도록 올바른 경제관을 심어주는 것은 나의 몫이겠지.



25살 까지는 납득할만한 수준의 용돈을 줄 것이다. 생활비나 주거 관련 비용도 책임을 져 줄 것이다. 본인이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알바를 하겠지만 그 또한 아이의 선택으로 둘 것이다. 그냥 나는 그렇게 해주고 싶다.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내가 책임을 져주고 싶다. 



혹자는 그렇게 말한다. 아이를 위한 최고의 교육은 집안의 가난이라고. 가난이 아이를 빨리 철들게 하고, 생활력을 강하게 만들고, 문제해결력을 길러준다고. 반면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풍족한 집안에서는 의존적인 아이가 된다고 한다.



일부는 동의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모의 철학과 교육에 달린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비약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저런 논리라면, 결손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범죄자가 된다는 일반화와 뭐가 다른가. 최고의 교육이 가난이라는 말은 가난한 부모들과 그럼에도 잘 자란 아이들을 위로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일찍 철든 아이를 칭찬하고 싶지 않다. 아이는 아이다웠으면 좋겠다.



나의 23살. 대학교를 졸업하니 나에게 남은 것은 학자금 대출 2천여만 원. 꿈이었던 임용고시를 계속 공부하는 것은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다. 미련 없이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재테크 공부를 하며 투자를 시작했다. 그 당시 내 월급이 2백만 원이 안 됐는데, 1년 만에 빚 2천만 원을 모두 갚았다. 



학원 강사는 새벽 1~2시에 퇴근하는 직업이었기에 차가 필요했다. 학자금 대출을 갚자마자 경차를 샀다. 역시 풀할부였다. 약 3년에 걸쳐 모두 갚았다.



자동차 할부가 끝나자 결혼을 하고 싶은 남자를 만났다. 둘 다 가진 것이 없었다. 결혼반지도 없이 다 무너져 가는 집을 얻어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허리띠를 졸라맸다. 밤에는 남편과 2인 1조로 대리운전도 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아서 결혼 10개월 만에 아파트를 샀다. 물론 은행대출을 풀로 받아서.



그렇게 살다 보니 나의 이십 대가 끝났다. 일만 하며 보냈다. 스무 살부터 일주일을 오롯이 쉬어본 적이 없다. 여행도, 취미도, 여가 생활도, 흥청망청 놀아본 적도 없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건만 나의 경제 수준은 늘 제자리였다. 빚으로 시작해서 빚으로 이어졌다. 허무하다. 



기억이 별로 없는 나의 20대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다짐한다. 적어도 아이가 사회에 첫 발걸음을 내딛을 때 빚으로 시작하게 만들지 말자! 그것이 나의 목표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자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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