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싱 1주년 서프라이즈
오늘 고향 어머니, 어싱(맨땅 걷기) 1주년 되는 날입니다. 매일 어머니께서 가족단톡방에 oo일 인증사진을 올려주시기 때문에,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며칠째다~. 이런 것까지 기억하진 못하는데, 이번에 서울 갈 일이 있어서, 여동생 내외를 잠깐 만났는데, 여동생 신랑이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형님, 이번주에 어머님 어싱 1주년인데, 기념해서 저희도 내려갈 까 봐요?!" "그래?! 그랬구나, 이번주가 벌써 1주년이구나"라고 말을 되뇌면서 '엇 이번에 이벤트를 생각해 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예전부터 어머니 운동하시는 데 한번 방문해서, 어머니뿐만 아니라, 같이 걷기 하시는 분들(거의 모두 고향 아는 어머님 분들, 동네 어르신, 성당 어르신)이라 인사도 한번 드리고 간식 같은 거 사 드리고 싶었거든요. 좀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연예인 밥차'같은 것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런 것은 많이 오버가 싶어서, 생각만 하고 말았지만, 정말 한 번은 어머니 운동하시는데 응원차 방문은 하고 싶었답니다. 그러니, 1주년이라는 타이틀이 있으니, 확실한 명분이 생긴 것이죠.
서울 일정 내려오면서, 어떻게 할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제가 어머니, 워싱하는데 많은 신경이 쓰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저희 어머니는 운동을 즐겨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 아버지가 운동 가자고 하면, 땀 흘리는 거 싫다시며, 혼자 집에서 쉬시거나, 가사 조금 하시면서 기다리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1년 9개월 전에,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어서, 우리 가족 모두,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물론, 연세가 드셔서, 가볍게 불편한 정도는 있었지만, 그렇게 심하게 여겨지는 병들은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그것을 집에서 지켜보시고 응급차 부르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직접 모든 것을 지켜보시던 어머니께서는 더욱더 힘들어하셨습니다. 특히나, 몇 십 년 동안 함께 사셨는데, 그 상대방에 대한 부재가 엄청나게 무서웠을 것 같습니다. 고향 집에 막냇동생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한동안 아버지의 환청도 들리시고, 잠도 잘 못 주무시고, 몇 개월동안 정말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몇 개월 보내시면서 우울증 증상까지 보이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날, 집에 가보니, "야, 정욱아, 니도 맨발 걷기 해봐라, 좋다~"하시면서, 맨발 걷기를 친구분 몇 분 들과 시작하셨다고 자랑처럼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제가 운동을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 좋죠. 조심히 하세요~. 뭐 양말 같은 거 필요 없으세요?"라고 가볍게 대꾸를 했지. 그렇게 며칠을 하시다가 말겠지. 싶었습니다.
그러나, 가족 단톡방에 거의 매일 인증숏이 올라오고, 사진에 보이는 사람들 발의 수도 점점 많아지고, 사진 찍을 때의 데코도 더 이뻐지고, 점점 좋아지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잃어버린 웃음을 조금씩 찾으시는 것 같아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모릅니다.
"정욱아, 걷기하고 나서 잠도 잘 오고 아이나, 어깨 결린데도 없어지고 아이나~" 이렇게 좋다 좋다 이야기하시는 에너지도 많이 좋아지시고, 정말 어싱에 감사하고 어싱을 같이 해 주시는 분들이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그래서, 1주년이라고 하길래, 간단한 이벤트라도 해 드려야겠다 싶었습니다. 간단한 간식도 준비하고요.
방문을 하려고 간식 품목, 장소, 시간 등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습니다. 간식 품목은 아내와 이야기해서 정하고 주문을 미리 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장소는 집 근처에 있는 중학교 운동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시간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어머니께 내일 방문한다고 얘기하고 알아 놓으면, 되겠지만, 서프라이즈가 될 수 없으니, 저는 서프라이즈를 택했습니다.
그래서, 전날 안부 전화해서, 더운 날씨를 핑계로, 이런저런 정보를 캐냅니다. "어머니, 더운데, 운동할 수 있나요? 어유 더운데,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하세요?" 등의 질문으로 대략적인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뭐 한 5시 나가서, 6시 30~40분 정도 돼서 들어오지"
이 정보를 입수하고 당일이 좀 더 바빠졌습니다. 당일 떡 주문도 10분이라도 더 당겨서 찾아야 했고, 서둘러야 해서, 저도 새벽 5시에 일어났습니다. 전날보다 빨리 퇴근해서 일찍 잤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기상하고 부랴부랴 떡과 식혜를 준비해서, 고향으로 출발합니다.
마지막까지도 혹시나 일찍 끝내고 들어갈 수도 있고 해서, 기다리라는 의미로 문자라도 할까? 고민했지만, 그냥 가 보기로 합니다. 학교 운동장에 도착하니, 반대편 계단식 스탠드에 어머님 모임, 여러분들이 모여있습니다. 벌써 운동을 마치시고 뭔가를 나눠 드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순간, '이때다. 더 늦으면 안 된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스박스(식혜)와 떡 3박스를 내려서, 끙끙하고 들고 갑니다.
근데, 제가 그렇게 들고 가니, 서로서로 수군거리더니, 한 어머님께서 대표로, "저희 뭐 안 시켰어요~!"라며 손사래를 절래 절래 치시며, 저리 가 보라는 손짓을 보냅니다. 아마 마트에서 온 사람으로 착각하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박 OO 씨~~".
그랬더니, 어릴 때 저를 잘 알고 계신 한 어머님께서, "아이고 OO엄마, 큰 아들아이가~?! 우짠 일이고?" 하시니까, 그제야, 어머니도 알아보시고 놀라 하셨습니다.
다들, 이런 경우는 없었는지, 아구야 아구야 라고 하시면서, "아이고 형님, 이래 기쁜 날 노래 한 곡 해야겠어요." 하시자, 어머니께서는 노래도 한곡 하셨습니다. 너무나 행복해하셨습니다.
어머니, 어싱 1주년 기념, 서프라이즈 성공했습니다.
어싱으로 어머니의 잃어버린 웃음도 찾고 건강도 찾은 거 같아서,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