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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Apr 24. 2022

아버지의 구순 선물은 17명이 만든 가족문집

“직계가족이야 그렇다 치고 누가 숙제 내듯이 글을 써서 줄까?”


아버지의 구순 기념 가족문집을 제안했을 때 남동생이 보인 반응이었다. 언니, 여동생이 “좋은 생각이네”라고 적극 찬성하고 나서자 남동생도 의문을 내리고 마음을 바꾸었다.


아버지가 올해 5월에 구순을 맞으신다. 코로나19 이후로 지난 2년간은 공식적인 명절과 기념일조차도 가족모임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시기에 아버지의 구순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 하는 생각은 가벼이 할 수 없는 문제였다.


기념한다는 것은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한다.’는 것이니 각자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글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독립출판을 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생각이기도 했다.


4남매가 가족문집에 찬성하면 아버지 세대의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 사위, 며느리, 그리고 아버지의 손주와 손주 사위들까지 3세대의 글을 모으면 작은 책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에 책 출간을 문의하자 지방선거와 겹치니 가능한 원고를 빨리 달라고 했다.

형제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원고 마감일을 정했다. 막상 마감일이 다가와도 원고를 보내기로 한 형제 카톡방은 잠잠했다.


마중물이 될 누군가의 첫 글이 필요했다. 그 글은 누구라도 “나도 쓸 수 있겠다.”는 마음을 들게 할 편안한 글이어야 했다. 나는 솔직한 글을 쓰는 남편에게 먼저 글 독촉을 했다. 마감일은 독촉하라고 있는 것이니 기꺼이 독촉의 총대를 멨다.


“막상 글을 쓰려니 어렵다.”는 언니에게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으니 함께 지내는 에피소드를 소재로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25년째 영국에 살고 있어 이제는 한국말로 글 쓰는 것을 잊었다는 여동생에게는 우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모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전화 통화로 동생이 기억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이 기억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데?”라는 내 말에 동생은 “얼마 전 신문에서 ‘요즘 같은 코로나 시기에는 예전의 좋은 기억들을 추억하는 것이 좋다.’는 글을 읽었는데 아버지와의 추억이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됐어.”라고 했다. 며칠 후 여동생은 아버지와의 시간을 정리해서 ‘좋은 기억으로 안부를 전합니다.’라는 글을 보내왔다.


나는 글이 올 때마다 형제 카톡방에 글을 공유했다. 글을 보며 글쓰기의 용기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형제들은 서로의 글을 보며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불러냈다. 한 사람의 기억은 다른 사람의 기억을 불러냈고 서로의 글이 서로에게 마중물이 되어주었다.


글을 쓰는 것에 다소 회의적이었던 남동생은 3차례에 걸쳐 글을 보내왔다. 결혼 전 부모님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남동생의 긴 글은 원고량에 대한 내 걱정을 일시에 해소해 주었다.

한 번 기억의 빗장이 풀리자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아버지와의 지난 시간들이 현재의 시간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4남매의 글이 진행되자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에게도 원고를 부탁했다. 손주와 손주 사위들에게서는 할아버지의 구순을 축하하는 간단한 카드 형식의 글이 도착했다. 엄마에게도 가족문집의 의미를 전하고 ‘아버지가 구순까지 건강하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취지의 구술을 옮겨 적었다.

이렇게 해서 구순기념 가족문집인 ‘우리의 아버지 오영선’에는 총 17명, 29 꼭지의 글이 모아졌다. 소량출판의 가족문집에 나는 글을 모아 목차를 정하고 책의 시작이 될 프롤로그를 썼다.

‘우리의 아버지 오영선’ 프롤로그 중 일부를 옮긴다.


‘이 책에는 우리 사 남매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시간들이 들어있다. 한 때 아버지의 꿈이기도 했을 우리가 돌아보는 아버지는 여러 모습이다. 각자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는 글을 쓰며 구순을 살아오신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를 높여 갈 수 있었다.


우리 사 남매는 결혼 후 온양에서, 군산에서, 태국에서, 영국에서, 원주에서 각자 흩어져 사는 기간이 길었다. 명절에 잠깐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다였다. 코로나로 가족모임이 더욱 뜸해진 이때 우리는 글을 쓰며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공유했다. 한 자리에 모인 이상의 시간을 만들어 갔다. 기억을 공유하며 서로에 대한 관심을 회복한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며 우리는 아버지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직도 우리가 철들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아버지의 삶 전체를 이해하지는 못 하지만 공동으로 이해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아버지의 성실함이었다.


글을 쓰며 아버지와의 시간을 기억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시작할 때 가졌던 우리의 걱정은 기우가 됐다.

우리 사 남매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성실이라는 재산으로 이 책을 냈다.


17명의 글을 다 정리했을 때 아버지의 원고가 도착했다. 시간에 쫓겨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이 책의 에필로그가 마지막에 도착한 아버지의 원고로 완성되었다. ‘나의 지난 세월’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부끄럽지만 보람찬’ 아버지의 지난 90년 시간이 들어 있었다. 17명 가족들이 글을 쓰며 서로 웃고 떠들고, 때로는 눈물짓는 사이에 아버지가 계셨다. 이 책의 마지막을 아버지가 완성시켜 주셨듯이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를 기억하고 기다려주는 우리 삶의 기둥이셨다.


이 책으로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셨던 오랜 마음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되돌려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아버지의 삶에 대한 용기가 계속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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