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고양이 Nov 25. 2021

돌봄일기#12 - 귀찮음과 덧없음 사이

한없이.

11월  1,2주차

귀찮음. 비콘 찍는 것을 3번이나 까먹었고 경고를 들었음. 돈이 부족함. 멍한 상태가 지속되고 둔해지는 감각. 어느 밤 생명의 전화로 4번 전화를 걸었으나 모두 부재중. 팔뚝을 깨물다 사람이 지나가서 급하게 기숙사로 복귀.     












귀찮음과 덧없음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아졌다. 눈뜨고 숨 쉬는 것까지 귀찮다. 회사동기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그러기 위해 에너지를 내는 것도 귀찮다.(물론 동기들은 착하다) 애써 기운을 내보지만 누가 봐도 억지로 웃는 티가 난다. 내가 느낄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괜히 피해주기 싫으니 입 다물고 가만히 있자. 


그렇다고 혼자 있으면 좀 편하나? 퇴근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글을 쓰려 해도 '보고 싶다'만 끄적거리다 펜을 놓는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글을 쓰지만 그 뿐이다. 보지도 않을 드라마를 틀어놓고 멍하니 의자에 앉아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몸에 모든 힘이 다 빠져나가버렸다.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 그럴 힘도, 의욕도, 의지도 없으니까. 


이제 모든 것은 귀찮음을 넘어 덧없이 느껴진다. 어차피 영원한 것은 없고 다 사라질 텐데, 아등바등 살아봤자 뭐하나. 아무리 귀찮고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도 아침은 오고 출근은 해야 하고 폐는 움직여 숨을 쉰다.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멍하니 시체처럼 걸어 다니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참 덧없다.


덧없다고 느껴지니 살기 싫어진다. 호흡하고 심장이 뛰고 근육이 움직이고 그러기 위해 먹고 다시 숨을 쉬고 이 모든 과정이 부질없고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그렇지, 원래 인생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거니까. 억지로 희망적인 척 할 필요는 없지. 모든 게 아깝다. 먹는 것도 아깝다. 뭐 하러 먹고 살려고 하지? 근데 덧없다며 또 아까울 건 뭔가. 생각이 뚝뚝 끊긴다.      





바다

나는 호수를 볼 때마다 가라앉고 싶다고 생각했다. 밑바닥은 대체로 고요하고, 잘 보이지 않으니까. 이 말을 할 때마다 엄마는 왜 그런 무서운 상상을 하냐고 물었다. 나는 딱히 무서운 상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다에 가고 싶었다. 바다에 가서 가라앉고 싶다. 심해는 1년에 20km도 못 갈 정도로 느린 속도로 움직인다고 한다. 고요하고 조용한 그곳에는 큰 이변이 발생할 확률이 적다. 폐로 코로 심지어 입으로 숨 쉬는 것이 버거운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아가미를 만들어 봐도 숨을 쉴 수 없다. 물 밑에서는 숨을 쉴 수 있을까. 그런 간절한 바람을 담아서 글을 썼다. 글을 다 썼을 때쯤 숨을 쉴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이었다.    




  

두려움


매일 퇴근하고 걸어가는 내내 울었다. 마스크가 젖어 못 쓰게 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울었다. 바다에 가라앉기를 계속 생각하다 문득 머릿속에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무슨 상황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다섯살 짜리 어린애가 되었다가 이도 저도 아닌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갔다. 머리는 '나는 그때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런 기분일 뿐'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의 '나'보다는 조금 더 성장한, 어쨌든 맷집이라도 강해진 '나'인 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기분을 느낀 거다. 나는 이제 느낄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더 이상 안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도 겁을 잔뜩 집어먹은 애였다. 덩치가 이만큼 크고 나이를 이만큼 먹었는데. 성인인데. 아직도 1인분의 몫을 못해내고 징징거리는 애 라는 사실을 마주하자마자 미칠 것 같았다. 동시에 너무 무서웠다. 나는 모든 걸 덧없이 본 것이 아니라 모든 걸 무서워 한 거다. 무서웠다. 끔찍하게 무섭다.



무서워서 친구에게전화를걸었다가끊었다. 멀쩡히잘사는애한테뭐하러이런상태를이야기하지. 날붙이를 만지작거리다 생명의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전부 받지 않았다. 늦은 밤이어서 일까.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폭발하고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제발 그만하라고 울었다. 팔뚝을 깨물다 사람이 지나가서 급하게 기숙사로 들어갔다. 옷소매가 침 때문에 축축했다. 옷을 빨래바구니에 넣고 씻고 잤다.    






  

그렇게 끝났다. 

할 수만 있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영영 자고 싶었다. 하지만 해는 뜨고 알람이 울렸고 나는 다시 출근했다.





작가의 이전글 나 인턴, 월남쌈 먹고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