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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음 Oct 22. 2023

겨우 한 글

나를 잘 돌볼 수 있다면.

 저녁시간을 어떻게 보낼 거냐는 질문에 조심스레 글을 적어내고픈 마음을 꺼냈다. 겨우, 겨우 비춰 드리우고서야 간신히 꺼내 보인 마음이다. 쓴 날보다 쓰지 못한 날이 빽빽하고도 길게 늘어져있다. 잘 쓰고 싶고 계속해 쓰고 싶은 마음과 달리 자꾸 반대의 짓을 하고야 만다. 누군가가 비로소 건넨 나의 상태를 묻는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퇴근을 하고 와 저녁을 먹으면 소진의 시간이었다. 하루동안 마구 흘러넘친 나를 또 제멋대로 흘려보내는 시간. 에너지를 쓰고 왔으니 채워야 하건만 꺼져가는 양초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구경하고 잠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슬펐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물음에 대한 질문만 생겨 외로웠다. 왜 나를 채워야 하는지 그 당위를 찾고자 애쓰니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는 듯해 슬프고 외롭다는 감정만 남았다. 자존감을 지지대 삼아 스스로 일어서야 하건만 어째서인지 누군가 손 내밀어주길 기다렸다. 손 내미는 것도 아닌, 그저 한마디, 그저 안부, 그저 눈길. 선인장에게도 물이 필요하듯 '단지'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도 좋을 것들이 그 작은 물음표를 찾지 못해 한참을 고개를 박고 엎드려 있었다. 외면하고 고개 돌리며 글을 직시하지 않는 것으로, 나의 욕구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조금씩 서늘해지는가 싶더니 곧이어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바람이 덮쳤다. 왜 항상 계절은 채 준비되기도 전에 오고야 마는 것일까. 사실 모든 것이 그랬다. 나는 아무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찾아왔다. 그렇게 나는 한 발 느리게 산다. 이전에는 나와 속도가 다른 이들과, 세상에 맞추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나의 속도를 알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헤엄치는 고래와 부유하는 해파리, 바람을 타는 철새와 팔랑이는 나비, 싹 틔우는 어린잎과 자전하는 지구를 떠올린다. 저마다의 속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 그런 세계에서 누군가와 서로의 속도를 살피며 맞추고자 함은 어찌 기적이 아니겠는가.


 마음이 편해지는 음색을 찾아 음을 켜고, 적당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담요를 두르고 안락한 자세로 글 앞에 앉았다. 이맘때쯤이면 걸어 다니는 난로가 된 강아지가 옆에 와 웅크린다. 몇 번 쓰다듬으면 더욱 쓰다듬을 것을 요하며 배를 내민다. 이대로 몇 차례 더 손길을 내어주면 간식을 줄 타이밍으로 잠시 자리에서 벗어나 귀여움 앞에 서성거리다가 다시 자리를 잡는다. 나의 집이었던 곳에서 벗어나 다시 돌아와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여전히 잡히지 않는 일상에서 중심을 잡기위해 노력해 볼 뿐이다.


 잘 쓰고 싶은데 원하던 것을 글로 잘 담아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여전히 얼기설기 쓰인 글을 다듬기 위해 노력해 볼 뿐이다. 그 방법이 가장 오래 걸리고 지루하더라도 달리 다른 요령으로는 타개할 수 없기에. 부단히 쌓아온 것들이 언젠가 나를 만들 테니. 천천히 그리고 적당히. 나의 속도로.


 적응을 잘하는 편이라며 자부했건만 '적응'이라고 여겨지는 시간 동안은 모든 일상이 뒤엉키고 흔들렸다. 영화나 만화에서 변신하기 위해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어떤 환경과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존재를 분해 후 다시 조립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야 드는 생각은 적응을 잘한다는 건 어쩌면 그 과정에 엉키고 설킨 시간들을 잘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겨우, 겨우 한 글 적어낸 것으로 나는 조금 더 괜찮아질 수 있다고 믿기에. 다시 방황하고 고개 숙이고 우회하고 소진되어도 다시 돌아와 쓸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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