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깨어있는 것이 일상인 날들이 있었다. 24시간 돌아가는 공항에서 4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까 약 35,000 이상의 시간 중 휴일과 주간 근로 시간을 제외하고 밤샌 시간을 여행으로 따져도, 나름의 장기 여행이었겠다.
처음엔 밤을 새워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설레기도 했다. 남들은 알지 못할 비밀을 마주하듯이. 그 넓은 곳을 손바닥 안처럼 누비고 지내다 보면 알고 싶지 않은 것들도 보이곤 한다. 때때로 비밀은 지켜질 때가 낭만적이다.
북적이고 밝은 공간에 어둠이 깔리고 하나둘 사람들이 지워지면 풍기는 분위기는 묘하게 얼굴을 바꿨다. 새벽 2시 10분. 마지막 비행기까지 탑승이 마감되면 불이 꺼지고, 위이잉 돌아가는 청소 기계 소리와 한없이 차가운 공기만이 그 자리에 남는다. 사람이 없으니 공간이 뻗어 있는 곳까지 시야가 닿는다. 밤사이 온도를 내려놓아야 낮 시간 동안에도 시원한 공기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숨을 곳 없이 춥다. 담요를 싸매고 몸을 한껏 웅크려봐도 거대한 찬 공기를 거둬낼 수 없기에 따듯한 이불속이 자꾸만 그립다.
깊은 밤은 시간을 내서라도 갖기 어려운 '나'와의 시간을 자꾸 만들어줬다. 의식의 흐름이 이어지다가 끊어지길 반복해 답을 얻지 못하는 질문들이 자꾸 자리를 맴돌았다. 3시가 넘어가고 4시가 되어가면 정신은 점차 탁해져 머릿속에 누군가 입김을 불어대는 것 같다. 안개가 끼듯 기운이 잠긴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날아가는 비행기들을 볼 때면 마음을 같이 태워 보내고팠는데 눈에 보이는 저 기체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어 금방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가장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에서 여전히 서있는 자신과 밤을 보냈다.
가장 늦게 새벽을 입고 가장 빠르게 새벽을 벗는 곳에서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았고(젊었고), 혼란했으며(아름다웠으며) 불안했다(빛났다).
새벽이 더 이상 일상이 아닌 날들에 산다. 모름지기 직장인에게 새벽은 내일의 나란 결재자의 승인이 쉬이 허용되지 않는 시간이다. 그걸 아는 이의 일상에는 쳇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새벽, 일탈의 문턱. 사르르 오는 잠과도 신경전을 펼쳐야 하니 피로에 물든 몸은 어서 눈감으라 소란하다. 쓰다 보니 한 글자 한 글자에 욕심나는 것이 퍽 기껍다. 쓰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모든 여정이 즐거움임을 기억했으면.
추워진 밤공기에 책상도 아닌 이불속에서 겨우 실눈을 뜨고 가만가만 쓴다. 이제야 자정을 넘어 새벽이라 일컫기엔 무리가 있을진대 의식의 흐름이 어딘가에 짓눌린 듯, 이어가고자 하는 말이 자꾸만 먼 길을 간다. 아마 이 글도 곧 마무리될 것이다. 내일의 새벽에게 기대어야지.
여전히 계속해 나아가야 한다고, 어딘가로 발걸음을 향해야 한다고 미래의 나로부터 기다림의 눈빛을 받는다. 그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해도 더 이상 슬프지 않다. 삶이란 것이 여행보다는 탐험이나 유랑에 가까워진 듯하다. 일정한 낮과 밤은 전보다 소곤소곤 질문했다. 이대로 괜찮은 것이냐고, 이것이 네가 원하는 삶이냐고. 반복되는 일상으로 외면했으며, 말하지 않음으로 답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곧 이후의 거름이며 그 질문에 답을 하고자 살아감을.
드문드문 마주하는 새벽에게 고한다. 이곳에서 나는 여전히 궁금하고(살아내고), 묻고 답하며(사랑하며), 어떤 건 여전히 알 수가 없다(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