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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음 Nov 14. 2024

존재만으로

그걸로 된 하루.

 우연히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몇 장 추렸다. 가장 먼저 털길이별로 다르게 귀여운 우리 집 강아지 사진을 골랐다. 그리곤 친구들과 함께한 단체 사진과 그 주, 약속이 있는 친구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인화했다. 만나기로 한 친구들은 이제 아기 엄마들이어서 저마다 동그랗고 아장거리는 아기들이 프로필로 걸려있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기를, 강아지를 사랑으로 키우다 보면 자연스레 '나'를 희미해지지만 그 작은 것들의 안녕에서 더 힘이 나는 이유는, 힘은, 자연스러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쓰는 기쁨은 나를 안심시킨다. 이상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더라도 키보드 위에서 타닥거리며 오가는 손가락이 나를 토닥인다. 오늘도 점심시간의 여유도 양보하며 일을 했더니 여간 눈이 침침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감도 안 잡히지만 이 별게 아닌 타닥거림이 나를 안심시킨다. 비로소 몸을 뉘일 곳으로 되돌아온 듯하다.

 한국인의 소파 용도가 그러하듯, 소파를 등받이 삼아 글을 쓰고 있는데 소파의 제 용도를 잘 알고 있는 우리 집 강아지는 내 등뒤에 누워 새근새근 숨소리를 들려준다. 그 따듯한 체온이 어깨에 닿으니 과연 사랑의 연주로다. 우리 집 강아지는 수면 유도제, 마약과 같은 치명적인 별명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한 번씩 고개 돌려 털에 얼굴을 비비적대면 귀찮은 듯 뒤척이곤 다시 원래의 자세를 취한다. 그리곤 더 곤한 숨소리를 낸다. 


 나는 일기와는 별로 친하지 않다. 최근 들어 다시 하루를 정리하는 메모를 시작했는데, 한 장 한 장 빼곡해지는 종이를 보니 나의 일상이 마냥 휘발되지 않는 것 같아 어쩐지 안심이 된다. 일기가 가져다주는 힘이란.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요성을 보다 새기게 된다면 습관적인 글쓰기가 가능해지려나.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으로는 닿을 수 없는 듯하다. 그냥 쓰다 보면 언젠가 좋은 글에 가까운 날이 있고, 아닌 날이 있는 게 아닐까. 지금으로서는 그런 생각이 든다.


 강아지는 참 따듯해. 겨울이면 우리 집 인기 난로가 된다. 여름이면 영 달갑지 않은 짐꾼이 되는데, 서늘한 가을밤엔 적당히 따듯한 이불이 된다. 이리 와. 조금 더 쓰다듬게 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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