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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음 Nov 09. 2024

좋은 기운은 사소함에 숨어 지내지

 출근 길 집을 나섰는데 곧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다. 다시 들어가 우산을 챙기긴 바빠 출근길만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걸음을 바삐했다. 아니나 다를까, 횡단보도에서 하나둘 우산을 펼치는 사람들 사이로 발을 동동거리며 신호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슬쩍 다가오는 그늘막에 고개를 돌려보니 종종 출근 길에 마주치는 아주머니가 우산을 내쪽으로 기울여 주셨다. 건너편까지만 같이 가자며 웃으시는 모습과 나라면 선뜻 용기내지 못했을 친절에 막 잠들 때의 포근함이 머리 위에 씌워진 듯했다. 아주머니의 작은 몸집에 어울리는 동그랗고 조그만 우산에 몸을 기울여 머리만 젖지 않는 자세가 되었지만 비가 와서 더 좋은 출근 길이었다.


 점심으로 집에서 가져온 반찬을 꺼내 끼니를 해결하고 정리하려 그릇들을 들었는데 미끄덩 놓치는 바람에 반찬의 빨간 소스가 사방으로 튀어버렸다. 으아앗! 옷이며 벽까지. 어쩜 이런 곳까지 튈 수가 있지 싶은 곳에도 흔적을 남기고야 말았다. 놓친 순간에 함께 식사를 하던 동료 모두가 벌떡 일어나 닦을 것을 가져왔다. 아무렴 그럴 수 있다며 옷부터 닦으라, 괜찮다, 덕분에 여기도 청소한다며 달래주는 말들. 모두 민망하고 당황했을 나를 위해 아낌없이 손길을 나눠주었다. 


 오늘은 시간단위로 한 일들을 나열할 수 있을 만큼 바빴는데 이상하리만치 지치지 않는 날이었다. 하루종일 우중충하고 우산을 쓸까 말까 눈치 게임하기 딱 좋은 날씨였지만 은근하게 적당했다. 여전히 바쁜 일상들이 예정돼있지만 나름대로 잘 해쳐 나아갈 수 있겠다는 느낌 마저 든다. 아주 작은 행운들이 일상에 녹아있는 것을 감각하는 것만으로 노를 저어갈 힘이 돋아나는 듯하다. 

 

 회의 중에 낸 아이디어가 채택되진 않았으나 그럼에도 아주 좋은 의견이었다는 옆자리 이의 눈짓과 오랜만에 만난 이에겐 새로 바꾼 머리가 아주 잘어울린다는 칭찬까지 들었다. 이렇게 좋아지는 거구나. 인생은. 이렇게 볕이 드는 거구나. 고단함에. 아주 서서히, 하지만 여실히, 스며들듯 그렇게 한 걸음. 한 줌. 하나씩. 행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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