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록
누군가가 나의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감각만으로도 퍽 살만하다는 기분이 든다. 요즘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다. 얕은 연결성이라도 이 세상 누군가는 나의 생각과 표현을 지켜보고자 한다는 것은 꽤 기쁜 일이면서도 제법 착실하게 살고픈 마음까지 쥐어준다. 그전까지 일상이 무력하지 않았음에도 보다 견고한 세계를 쌓아가고 싶게 만드는 힘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살피고, 궁금해한다는 것은 사랑과 다르지 않다. 글쓰기 모임이 치유의 영역임을 반박할 수 없는 이유다.
한 주 동안 같은 이들의 안부는 어땠을까 그려보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면서 마치 가지 못해 본 세계에 새로운 친구가 생긴듯한 기분을 안겨준다. 나 또한 얼핏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싶어져 욕심이 난다. 하루하루를 어떤 기분으로 지내고 있는지, 재미있던 일화는 없는지,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일상은 좀 더 다채로워진다.
글을 쓰고 싶거든, 글이 되는 삶을 살라고 어떤 책에서 누군가 읽고 전해주었다. 과연, 글이 되는 삶이란 사소한 것도 음미하고 찬찬히 바라보고 집요하게 다듬는 것이다. 오늘은 딱 가을 날씨여서 조금만 더 추워지면 금세 겨울이 되겠다며 시간 앞에 비탈길 구슬 굴러가는 소리 따윌 했다. 손바닥을 하늘에 천천히 보여줘야 느낄 수 있는 비를 맞으며 반갑지도 탐탁지도 않은 밍숭함을 뒤로하고 점심은 매콤한 비빔국수를 먹었다. 이전에 함께 일하던 동료가 좋아하던 곳이어서 여길 오면 한 번씩 생각이 난다. 회사 따윈 순식간에 잊고 잘 지내고 있겠지. 간간히 올라오는 SNS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하던 명랑함이 엿보인다. 동료가 좋아했던 메뉴는 어쩐지 앞에서 맛있다며 호들갑 떠는 이가 없으니 맛이 덜했다. 날씨 탓인가. 한참 더울 때 먹었어야 했는데. 한참 시원한 바람을 갈구하면서 여름을 버텼는데 날이 선선해지니 벌써 올해도 끝이 보여 시큰둥해진다. 시간 가는 게 달갑지 않아 짐을 예상했지만 참 삼키기 싫다.
아직 두 달 남짓 남았는데도 벌써 올해가 다 갔다는 둥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걸 보면 어릴 적 '참 이상한 소릴하는 어른이다'했던 것이 내가 되었구나 싶다. 그걸 매번 곱씹게 되는 것도 썩 별로다. 이 과정을 복기하곤 푹푹 한숨지으면 우리 집에 있는 공기청정기와 온갖 식물들이 열일하는 것이 보이는 듯하다. 시간을 감각하고 싶지 않아 일을 벌이는지도 모르겠다. 한갓진 탄성을 내뱉을 여유조차 없이 지내다 보면 문득, 주머니에서 느낌표를 뒤적이고플 만큼 새로울까 싶어서. 분명 오늘도 꽤나 바빴으므로 시간 앞에 무력하지 않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자자. 자는 시간만큼은 헤아리지 않아도 되니까. 이 밋밋하고 버거워지는 감각으로부터 해방의 밤이 날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