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욕구에 맞서 좋은 사람을 알아보고 관계를 이어가는 어려움은 말해 무엇하랴.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에 대한 기준을 아무리 생각하고 설정한들 이루어진다고 말하긴 어렵다. 재미있지 않은가. 생각하거나 감각하지 않고는 알아차릴 수 없으면서도 그리한들 충족되지 않는다. 잡힐 듯 말듯한 밧줄 같기도, 만질 수 있을듯한 구름 같기도 하다.
서점에서 잠시 눈을 둘 책을 집어 들었다. 사랑한다고 제목에서부터 고백하며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서도 '죽고 싶다, 사랑이라 외친다, 아름답다'로 매듭지어진 말들이 소리쳤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좋은 사람이 되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겠으나 오늘 읽었던 책의 말을 빌려오면, 인사를 잘 주고받는 사람이다. 편안히 눈을 맞추고 허물없이 웃으며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감사를 이야기하는 것. 말은 아낄수록 좋지만 표현은 꽉 차도 좋지 않은가.
과연 좋은 사람. 그들도 사람이기에 사람이 필요하지만,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끌어올리고 비워진 부분을 메우려 하지 않는 것. 자신으로도 충만하여 타인 또한 그 자체로 바라보되 존재로 인정하여 품을 수 있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이다. 그렇다면 충만한 사람은 어떻게 일상을 조직하는가. 자신의 생각과 행동으로 삶이 꾸려짐을 알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살필 줄 아는 것. 개인의 가치가 관계와 사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감각하고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톱니바퀴처럼 알맞게 작동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살핌, 주변에 대한 관심과 호응, 일(업무, 여가, 행동 등)과 관계(사회, 환경, 자아 등)의 존재와 인식처럼 주고받는 영향과 효과를 알아차림이 중요하다.
다시 본질로 돌아가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 실행하여 증명되었다 말할 수 없으니 이렇듯 감각해 보고 이후 삶으로써 알아봐야 할 영역이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노라 쓸 뿐이며 몇 년 후, 혹은 죽음을 앞에 두고서 그런가 보다 할 뿐. 저마다의 삶을 살기에 저마다의 정의가 필요하다. 2024년의 나는 이렇듯 어설프게나마 그려보았다.
그 당시에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고 한다. 하나의 개인은 하나의 우주이자 하나의 세계이니 만큼, 나라는 사람의 2024년 역사는 이렇게 썼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고픈 보편적인 인식에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대중적인 관점에서 퍼져나가, 내가 꿈꾸는 좋은 사람에 대한 생각과 이상. 그 거리에 대한 가늠. 일단, 먼저 좋은 사람이 될 것. 스스로 돌보고 충만할 것. 그러기 위해 자신과 주변을 잘 살필 것. 그 모든 것에 넉넉한 자리를 내어 줄 만큼 자신의 세계를 넓히기 위해 노력할 것.
우습게도 이 작은 확장은 다시 기본으로 넘어온다. 차고 넘쳐나는 자기 계발서에서 역사를 가지고 말한 것들. 운동하라. 신체를 건강히 하는 것은 몸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온다. 공부하라. 자신의 세계와 시야를 확장하는 것은 많이 혹은 깊이 아는 것과 닿아있다. 친절하라. 나와 타인, 세계와 자연과 어우러 살아가기 위해 현명한 태도가 필요하다. 너무나 뻔한 것에 다소 식상함은 얼마든지 덧댈 수 있다.
결국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느 순간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다. 그리하여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떤 결괏값이 아닐지 모른다.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마음을 가지고 비슷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할 수 있는 전부 인지도 모른다. 비슷한 가치를 가진 사람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까지 썼음에도 끝은 없다. 과정만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