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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랑바쌈 Dec 10. 2021

당신은 몰랐던 맛의 비밀

지나간 맛과 함께 살아가기

음식을 먹다가 눈물이 흐르는 것만큼 당혹스럽고 민망한 순간도 없다.

눈과 코는 연결된 기관이라 눈물이 솟아나면 콧물도 흐르는데 이 상태에선 억지로 코를 닫은 채 목구멍만 열고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음식은 미각만큼 후각도 중요한데, 코를 막고 먹으면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일행이 눈치채지 못하게, 벌써 배가 부른 것처럼 수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화장실을 찾는다. 찬물을 여러 차례 끼얹어도 부은 눈은 금방 가라앉지 않는다.


몇 년 전 부산의 한 동네 횟집에서 회를 먹다가 겪은 일이다. 부산 회가 얼마나 맛있길래 눈물까지 쏟냐고? 정확히는 회를 찍어먹는 양념소스 맛 때문이었다. 서울에선 보통 와사비를 푼 간장이나 초고추장에 주로 찍어 먹는다. 일부 횟집들은 누런 쌈장소스를 내놓기도 한다. 부산 횟집에서 내놓는 양념소스는 좀 다르다. 고추장과 된장을 반반 정도 섞은 베이스에, 마늘, 부추, 땡초를 잘게 충분히 썰어 넣고 깨와 참기름을 넣어서 푹푹 퍼담아 준다.(그냥 맛으로 그려본 레시피다) 여기에 회를 한점 찍어 먹으면 어떤 회도 고소하다.  소스는 무제한 리필이 된다. 회를 무슨 소스 맛으로 먹냐고 겠지만, 회의 참맛을 몰랐던 시절 아버지와 가끔 동네 횟집에서 먹던 회의 맛이란 바로 그 양념장 맛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년쯤 지나 들른 부산 한 횟집에서 바로 그 양념소스가 나온 것이다. 회 한 점을 풍덩 빠뜨려 건져먹는데 익숙한 맛이었다. 눈물샘이 터져서 코가 막혔다.


지나간 맛을 지나갔다고 할 수 없다고 소설가 김훈 선생이 그랬다. "음식을 먹으면 그 재료는 똥이 되어 몸을 빠져나가지만, 맛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의 지층 맨 밑바닥에 숨어 있다가 불현듯 솟아오른다"라는 그의 말을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추억의 맛이 아니라 맛의 추억이다. 둘이 살 때 아버지는 가끔 된장을 끓여주셨는데 그 된장을 나는 지금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 맛이 조미료나 설탕 때문이었다면 얼마나 넣었는지 좀 적어놓고 가셨으면 좋았겠다싶다. 보통 된장은 크게 고기 된장과 해물된장이 있다. 아버지는 독특하게 고기와 조개를 함께 넣어 된장을 끓였는데, 이때 고기가 소고기였는지 돼지고기였는지 확실치 않다. 압도적인 것은 조개였다. 대합 몇 를 숭덩숭덩 썰어서 한냄비 끓여놓으면 며칠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국물엔 바다향이 가득했고 숟가락에 건져 올라오는 조개 살점은 쫄깃했다. 와이프한테 대합을 넣은 된장을 여러 차례 주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리집엔 "나 해산물 안 먹습니다"를 선언한 큰 딸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똑같은 맛을 낼 자신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벌써 이십 년이 다 된 일이다. 취직을 하고 서울 생활을 하면서 일 년에 두 번 명절에 내려와 아버지와 식사를 했다. 부산역 근처 돼지갈비나 횟집을 주로 찾았다. 그날은 횟집이었다. 식사중에 나는 아버지에게 얼굴을 붉히며 대들었다. 그럴만한 이유는 있었다. 아버지는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던 착한 아들의 돌변에 아무 말도 못 하고 허공만 바라보셨다. 나 역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말없이 젓가락에 양념소스만 찍어서 입에 가져가길 반복했다. 그때의 양념장 맛이 내 마음의 지층 맨 밑바닥에 숨어 있다가 가끔씩 솟아오른다. 쓴 맛이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 둘째 아들은 나처럼 착하진 않다. 아무리 아들이라도 비교는 공정해야 하니까. 벌써부터 한 마디씩 대꾸하며 쏘아붙이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내가 아무 말 못 하는 것은 힘과 논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아들의 모습에서 나를 보기 때문이다. 나는 썩 괜찮다. 삼십 년을 착하기만 하다가 갑자기 돌변하는 것보단 이렇게 일찍부터 간간이 예방주사를 놓아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생각도 한다. 혹시 모르지 않나. 어른이 되면 좀 더 살갑게 변할지도.


오늘 아침은 일찍 깼다. 창문을 열었다.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겨울치곤 너무 온화했다. 와이셔츠 위에 두꺼운 니트 대신 얇은 조끼를 껴입었다. 한겨울 코트는 아직 꺼내지도 못했다. 7년 전 오늘과 같은 계절이라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포근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진지 만 7년째다. 그날은 아버지가 계시던 부산에도 폭설이 쏟아졌다. 창가에서 나는 날씨가 조금 더 추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해성사를 하자면, 날이 추워지는 걸 느끼면 아버지 기일을 떠올렸는데, 따뜻한 날씨에 속아 벌써 이틀을 넘겨버렸다. 며칠 지났지만 별로 죄송하진 않다. 꼭 기일이 아니어도 충분히 많은 날들과 시간을 아버지를 기억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러려고 애쓰지 않아도 내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그럴 수밖에 없다. 아이를 통해서 나를 볼 때마다 내속의 아버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어른 행세하는 아들 딸과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이다. 딸의 해산물 거부 때문이 아니더라도 대합을 넣은 된장은 포기해야겠다. 코를 막고 먹을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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