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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랑바쌈 Sep 27. 2022

장사의 기본

손해 좀 보더라도

3.5평 아버지의 구멍가게는 이미 돈을 버는 목적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고작 하루 3~4만 원 매출로는 그날 점심 끼니 때울 정도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장사를 한다는 것은 돈을 버는 것 외에도 몇 가지 유익이 있었다.

가게를 살피느라 다른 걱정을 덜 할 수 있다는 것,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심심한 오후를 때울 수도 있고, 앉았다 일어났다 가게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수도 있다.

가끔씩 아들 부부가 오면 고물상에서 주워온 작고 낡은 테이블에 앉혀놓고 담소를 나눌 수도 있고, 손자들 고사리 같은 손잡고 옆 가게에 가서 고래밥과 홈런볼을 사줄 수도 있다.

아버지는 한 달에 두 번 정기휴일을 제외하고는 어김없이 가게 문을 열었다.

아들이 명절 연휴 가족여행을 제안해도 가게를 비울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하셨다.

아들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루 고작 만원 벌려고 그렇게 연휴에도 꼬박꼬박 문을 열어야 되느냐고 한두 번 따지기도 했다.

아버지는 손님이 와서 허탕 치면 큰 실례라고 했다.

...

7:43분

야근을 하다가 또 구내식당 시간을 넘겨버렸다.

귀찮지만 분식집 김밥이라도 한 줄 사 먹으려 청사 밖 상가 건물로 털레털레 발걸음을 땠다.

세종시는 크게 세 종류의 건물로 구성된 도시다.

정부청사, 아파트, 상가.

그 상가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이 식당이니 아직 공실률이 많다 해도 식당들은 많고 다양하다.

그런데, 8시도 안 된 시간에 김밥 한 줄 먹을 식당이 없다는 게 현실이다.

7시 반이면 손님들이 썰물 빠지듯 빠진다. 이후 드물게 찾아오는 한두 명의 손님을 위해 문을 열어놓은 가게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직 손님 한둘 남아있는 식당을 발견하고 들어갈라치면 식당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모를 아주머니가 얼른 방어 신공을 펼친다.

"영업 끝났어요"라고 말하는 표정에는 미안한 기색이 없다.

분명 출입문에 쓰여있는 영업시간은 오후 9시까지인데.

차리리 '7시 30분 마지막 주문' 써붙여 놓든지..

장사도 안 되는 데 집에 가서 발 뻗고 쉬는 게 낫겠다며 일찍 셔터 내리는 주인들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나, 그렇게 원칙 없는 장사가 잘 될 리 없다는 나의 예측은 대개 들어맞는다.

지난 추석 연휴가 길었다.

늦은 여름휴가로 이미 고향에 다녀온 터라 끼니를 해결하러 연휴 내내 근처 상가를 자주 배회했다.

"추석 연휴 10~11일 쉽니다." 또는 "추석 당일(10일)만 쉽니다"

이렇게 써 붙여 놓은 식당들도 많지만 아무런 공지도 기약도 없이 문만 걸어 잠긴 식당들도 적지 않다.

"장사를 하는데 휴무 계획을 붙여놓지도 않고 가면 어쩌란 거지?"

이런 불평을 꺼내면 아내는 꼰대 오브 더 꼰대라며 질색하기 일쑤지만 그래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장사의 기본이지.


아들은 생전 그토록 답답하게 생각했던 아버지의 꼰대스러움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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