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노라면, 주인공이 자신의 그림자와 헤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림자는 절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역설적으로 느껴졌으며, 내 그림자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헤어진 뒤로 내 머릿 속에서, 가슴 속에서 여전히 살고 있으며 가끔 내게 말을 거는 '그녀'는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다. 그녀의 그림자가 아니라 내 그림자, 더 정확히 말해 내 외로움의 그림자, 내 공허함의 그림자다.
그림자의 실체가 그녀라고 생각해서 연락해보면, 너무나 차갑게-그림자와 닮은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나 싶을 정도로-대꾸해오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하여 내 회상 속 그녀는 나의 그림자이자, 박제된 화석이다.
그림자를 버리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곡차곡 내 것이 되어가고 있는 내 삶 한복판에서, 그녀 모양의 내 그림자를 애써 외면하거나 부인힌지 말자. 그것이 내가 살아있다는, 내 머리 위에 살아있는 태양을 이고있다는 반증일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