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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Sep 03. 2023

그 사람과 잤어?

 사람과 잤어?

라고 묻는 이유가 뭘까


 사람과 했냐? 라는 말보다는 고상하게 느껴져서일까.

아니,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럴거야.


쾌락에 빠진 표정과 격한 신음 소리를 이미 머릿속에 그리면서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잤어? 라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상대방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새근새근 숨소리를 들으며

무장 해제된 잠꼬대를 들으며

침 냄새를 맡으며

코고는 소리, 이가는 소리를 들으며, 머리 냄새를 맡으며

그 사람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밤을 보냈냐는 사적인, 시적인 질문인거지


그 사람과 자고 난 이후엔

혼자 자면서도 그 사람과 함께하는 꿈을 꾸게 돼

그래서 혼자 잔다고 할 수 없을 거야

때로 악몽을 꾸더라도

그 사람을 생각하며 배개를 꼭 끌어안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끔찍한 꿈을 꾸다가 그 사람이 구해주는 장면에서 다행이다 싶어 눈을 떴는데,실제로 그 사람이 옆에서 코골고 자고 있으면 노랫 소리처럼 들린다는게지.


‘네가 있어 다행이야’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팔배개를 해줄 수도 있지. (배개 끌어안고 잔다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배개를 팔배개 해준다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어. 팔배개는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을 해주는거야)


부부의 정이 무서운 것은 한 평생을 같이 잔다는 거야.


별거 또는 각방을 하지 않는 이상 하루에 8시간, 하루의 1/3을 등을 기대던 끌어안던 멀리서 체온만 느끼던 함께 한다는 거야. 그래서 부부 싸움을 해도 별거나 각방을 해선 안 된다는 거야. 아무 말 안하고 같이 자기만 해도 몸은 안정감을 느낀다는거야. 다음 날 쉽게 사과의 손을 내미는 것도, 푹 자서 기분이 풀려서 그런 것도 있지만 몸으로 이미 화해를 해왔던거야. 무려 8시간 동안 말이지.  


따라서 그 사람과 잤어? 라는 말은

그 사람과 부부가 됐어? 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잤냐, 라는 질문에 ‘잤어’라고 대답했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잠이 나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자고 싶다는 뜻이니까.


왜 ‘자다’가 동사겠어.

우린 자는 행동을 의식을 잃고 무기력한 밤의 포로가 되는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무언가를 계속 하고 있는거야

인생의 1/3이란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건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침대가 좋아야 하고, 1박에 몇 십 만원짜리 호캉스도 우리는 아까워하지 않는 거야.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말이

잘 자요

이고

힘이 되는 말이

잘 잤어요? 인 게야.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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