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이직러
"와 어떻게 바로 이직을 할 수 있어?"
2년 반 가량을 다녔던 회사에서 퇴사하고 2주 만에 새 회사에 입사한 나에게 친구가 했던 말이다.
조금 쉬어야 하지 않겠냐는 친구의 말에 처음 들었던 생각은
'돈 벌어야지, 쉴 시간이 어딨어'였다.
처음 퇴사를 생각했을 땐 그만두면 한 달가량은 조금 쉬어볼까? 였지만 막상 쉬려고 생각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쉬어야 할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쉼'이라는 시간이 혹여나 나의 커리어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에
휴식보다는 빠르게 이직을 하는 방향을 선택했고 지금보다 더 나은 회사, 월급을 더 많이 주는 회사를 찾기 위해 2주에 한 번씩은 면접을 보러 다녔다. 퇴사 일정이 잡힌 뒤로는 더욱 이직에 성공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업그레이드하고, 자소서를 각 회사의 양식에 맞춰 쓰느라 뜬 눈으로 밤을 새기도 했다.
사실 나는 매번 이래 왔다.
남들에 비해 이렇다 할 스펙이 없어 그저 몸으로 부딪혀서 스스로 앞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방송국 조연출에서부터 외주 프로덕션 그리고 MCN회사까지 이직에 이직을 거듭했다.
경제적인 이유도 한몫했던 것 같다. 집이 그 다지 여유 있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로 나는 단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었다. 카페 알바에서부터 편의점, PC방, 음식집 서빙 등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으려 했고 지금 내가 알바를 그만두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결국 이 생각은 내가 취업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까지 이어졌다.
JTBC를 퇴사하고 잠시 대학교 졸업을 위해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조차 패스트푸드 점에서 약 1년가량을 일하며 취업 준비를 했다. 발 뒤꿈치가 까져가면서 면접을 보러 다니고 매일매일 자소서를 업데이트하며 20대를 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내 인생은 성공할 줄 알았던 것 같다.
이렇게 열심히 살면, 이렇게 뛰어다니면, 이렇게 치열하게 살면 시간이 지나면 내가 바라던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겠지.
크나큰 착각이었다.
30대의 문턱을 넘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남들만큼 살기 위해' 또다시 이직을 했지만 '남들만큼 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프로 이직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이직도 능력이 있으니까 하는 거라며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직을 거듭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퇴사와, 이직의 원동력은 내가 만들어낸 나의 불안함 덩어리 때문이었으니까.
그 불안함 때문에 나를 몰아세우고 이미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달리기만 해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린 거다.
만약 삶의 방향을 다시 찾기 위해 불안함을 평생 안고 가야 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도 방향을 못찾겠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내가 내린 결론은, 불안함과 친구를 먹는 것이다.
이왕 평생을 같이 가야 한다면 불안함을 떨쳐내 버리려고 아등바등 애쓰는 게 아니라
내 불안함을 인정하고,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를 내가 인정하며 불안함에 익숙해지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안고 가야 하는 불안함을 잘 어르고 달래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으로 쓰이게끔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 싶다.
가끔 이 친구가 나를 너무 힘들게 할 때면 잠시 눈을 감고 누워보려고 한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쉬고 복작복작한 세상의 향기를 맡아볼 거다.
예를 들면 가을 안국동 골목에서 나는 고소한 군밤 냄새 같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