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저한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지금은 '아날로그-스럽다'라는 말이 덕목이 아닌 시대가 되어 버렸지만, 2000년대 초 밀레니엄 때만 해도 '아날로그'라는 말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참 정감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코로나 이후로는 더 급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남들이 1년도 사용하지 않은 핸드폰을 새로운 기능이 첨가된 핸드폰으로 갈아치울 때도, 나는 최신폰도 아닌 것을 3년이나 사용했다. 바꿀 때도 좋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옮기는 작업이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이런 나에게, 휴대폰이 족쇄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휴대폰은 상대의 행방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알려주는 요물이기는 하지만.... 마치 대기를 타고 있는 것처럼, 남들이 걸어오는 전화를 즉각적으로 받이야 한다는 생각이 싫었다. 내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나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무음이나 진동으로 해 놓고 나중에 확인하거나, 카톡이 없던 시절에는 자주 핸드폰을 확인하지 않기도 했다. 그럴 때면, 돌아오는 반응들...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 '받기 싫은가 보지'
"부재중이 뜨면 전화를 해야지!" / '좀 기다려'
"핸드폰은 왜 갖고 다니는 거야?" / '내가 필요하니까.'
물론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사람들에게 저런 말을 속으로 했던 것 같다. 성격 급한 지인들, 잠수 타지 말라던 친구들까지.... 그들은 나에게 이기적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만의 시간을 보장받고 싶은 심리는 당연한 거 아닌가...
마치 '위치 추적 장치'를 내 몸에 심은 것처럼 왜 그들에게 즉각적으로 내 위치를 알리고, 반응을 해줘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나만 생각할 수 없기에 전화를 자주 확인 하지만, 가끔은 전화기를 꺼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부재중 전화가 떴는데, 전화하고 싶은 기분이 아닐 때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휴대폰'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무시하고 싶은 '아날로그적인' 감성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할까....
누구나 그럴 때 있지 않나? 자꾸만 울리는 알림을 무시하고 '건너뛰고 싶은' 그런 마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받지 않는 상대를 타박하지 않는다.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말아 버린다.
가끔 휴대폰을 꺼두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일하는 주중에는 힘들더라도, 자유롭게 쉬는 휴일만이라도 타의에 의한 방해를 받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대를 이해해 주길바란다. 본래 인간이란 동물은 혼자 있는 시간을 추구하는 법이니까.
오늘도 나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나'스럽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그래야 진정으로 행복한삶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