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준비가 한창인 시간에 육아빠는 식탁에 가만히 앉아 아이들이 하는 데로 지켜보고 있다. 아이들은 숟가락을 놓고 물컵을 내어놓고 반찬 뚜껑을 연다. 일엄마는 “아빠가 해야지~ 저는 가만히 있고 왜 애들을 시키는 거야?”라고 한차례 쏘아 붙였다. 그러자 육아빠는 “애들이 하는 것에 기회를 주는 거야. 애들이 직접 꺼내보고 식탁도 차려보고 해야지 다음에 우리가 없을 때 스스로 먹을 수 있지..”그리고 마음이 급해진 일엄마는 먼저 먹으라고 했더니 “아니야..엄마 올 때까지 기다려. 식사는 같이 시작 하는거야”
우리 어렸을 때난 엄마의 바깥활동을 드문 시절이라 엄마들은 주로 집안일에 밥과 식탁을 차리셨다. 그러다보니 우리 먼저 먹으라하고 뒤늦게 드시는 경우도 많았다. 애들 할머니는 아직도 우리 다 차려 주고 뒤늦게 혼자서 천천히 드신다. 평생 그리 사셔서 같이 앉아서 도란도란 드시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신 모양이다. 식사를 할때마다 할머니는 가족들 시중만 드시는 것 같아서 불편하면서도 안타깝다.
아이들은 부모와 형제, 가정 내에서 세상을 처음으로 배운다. 그래서 부모와 더불어 양육자들이 하는 가정교육은 아이들에게 자존감, 자립심, 책임감, 배려심 등을 심어주며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장소이다. 가정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자신감을 키우고 존재의 의미를 깨닳을 수 있다.
아이들은 집안일을 통해 다양한 능력을 향상 시킬 수 있다. 집안일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책임감, 감사, 협력, 능력 등을 키우는 중요한 과정이다. 또한, 집안일을 통해 아이는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알게 되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가정교육 및 집안일을 가르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아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집안일을 맡겨주어야 한다. 아이가 하는 것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아이가 조금 부족하게 해서 부모가 다시 하게되는 수고로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비난보다는 칭찬과 격려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집안일을 도와주다 보면 아이가 욕심을 부릴 때가 있다. 예를들면 칼질이나 가스불을 켜는 일같은 것 말이다. 그럴 때는 자제시켜 주고 필요한 부분을 가르쳐 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될 일이다.
집에서 형제들과의 관계도 중요한 관계 형성 중 하나이다. 형제끼리 서로 도와 일을 빨리 끝냈을 때의 뿌듯함과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양보하는 협력과 배려를 배우게 된다. 이에 형제들의 유대감과 침밀감을 강화하고 협력과 배려를 배우게 된다.
아이들이 집안일을 수행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벌이 되어서도 안되고 보상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어떤 집안일 후에 용돈을 좀 더 준다던지 하는 보상을 주는데 이 방법을 쓴다면 경제활동에 대한 대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지 보상이 위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집안일의 가치와 의미를 가르치며 보상보다는 가정 내 협력과 책임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집안일을 수행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도와야 한다.
처음엔 나도 엄마가 집안일을 해야 잘 돌아간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하면서도 집안일에 집밥까지 손수했다. 그 외에 아이들의 케어는 육아빠가 다 했다. 하지만 육아빠는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더 많이 가르치고 아이들이 혼자 할 수 있게 되니 나도 조금씩 손을 덜게 되었다. 빨래를 갠다면 아이들에게 자신의 옷은 자신이 가져가서 정리한다. 먹었던 밥은 싱크대에 담궈놓고 밥상을 함께 차리고 함께 치운다. 일각에는 아이들을 집안일을 시키는 것이 학대의 일종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아이들을 집안일을 시켜 어른들이 편하자고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가정 내의 일원으로서의 할 일을 주고 그것에 대해 보람을 갖고 소정의 일을 처리함으로써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서 소위 말해 젖떼기를 시전하는 단계라고 육아빠는 말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어른들의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잘 따라와 주었고 아들은 이제 혼자 라면 한개 정도는 끓일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