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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춘 Feb 04. 2024

저녁 숲, 고래여

<붓글 전> / 나의 시, 나의 노래


鯨旣離海下 (경기리해하)

我晩着此林 (아만착차림)


고래는 벌써 물 아래로 떠나고

나는 이 숲에 너무 늦게 도착했구나





저녁 숲, 고래여


겨울 비 오다 말다, 반구대 어둑 어둑

배 띄우러 가는 골짜기 춥고

사납게만 휘도는 검은 물빛 대곡천 

시끄럽게 내 발길을 잡고

다만 어린 고래여, 꿈꾸는 고래여

거기 동해로 가는 길은 어디

어기야 디야, 깊고 푸른 바다

어기야, 그 망망대해...


나의 고래는 이미 물 아래로 떠났을까

태고의 바위들 굳게 입 다물고

그의 체크 무늬 모자 위 차가운 비 그치고

“허어... 그 배를 볼 수가 없군요”

아, 어린 고래여, 나의 하얀 고래여

우리 너무 늦게 도착했나

어기야 디야, 깊고 푸른 바다

어기야, 그 백척간두...


먼 세기 울산만의 신화도 아득하고

소년들의 포구도 사라지고

문 닫힌 컨테이너 그 옛날 매점 간판만

숲으로 가는 길을 막고 섰네

다만, 어린 고래여, 꿈꾸는 고래여

붉은 산호들 춤추는 심해는 어디

어기야 디야, 저녁 숲 속의 바다

어기야, 거기 서 있는 고래여...


거기 문득, 서 있는 고래여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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