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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Apr 30. 2024

우리가 힘이 없지, 꿈이 없냐

은퇴한, 어느 늙은 택시운전수 인터뷰

따분하고도 갑갑한 직장 생활 속에서 불안하고도 위태로운 프리랜서 생활 속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은퇴를 꿈꾼다. 시끌시끌 손이 많이 가는 자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모두 출가시키고 유유자적한 삶의 모습을 꿈꾼다.  그렇게 꿈에 그리는 은퇴의 날을 맞이한 한 택시운전수가 있다. 뒤늦게 한 결혼에서 얻은 두 딸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할 줄 아는 건 운전밖에 없던 그가 주행거리를 차곡차곡 쌓으며 인생을 운전해 왔다. 동고동락하며 지내온 택시를 처분하고 제3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우리의 꿈의 자리에 있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시 시작되는 당신의 꿈은 무엇이냐고.



Q. 먼저 무사고 택시 운전수로 은퇴하심을 축하드립니다. 회사택시경력까지 하면 40년이 훌쩍 넘는데요, 택시를 떠나보내는 마음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A. 제가 젊었을 때 건강이 좋지 않아 힘을 쓰는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운전은 앉아서 하다 보니 할 수 있었죠. 길을 잘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운전 센스는 있는 편이라 다행히 사고 없이 운전생활을 끝내게 되었네요. 택시는 한번 차를 구입하여 잘 관리하면 10년 정도 차를 유지할 수 있어요. 마지막 차가 될 거라고 여긴 차들이 몇 대 있었지만 이제야 정말 마지막 차가 되어 택시등을 떼어냈네요. 택시 등을 떼어내고 일반 차로 바꾸던 날 왠지 모르게 헛헛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인생의 동반자가 훅 사라진 느낌이요. 여기저기 누비며 안전하게 지켜주고 우리 집의 소중한 기둥이 되어준 친구가 훌쩍 떠나버린 느낌이었죠. 근데 일반차로 전향하고 보험을 가입하려니 택시 경력은 하나도 인정해주지 않고 처음 운전하는 사람이 되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어요. 나는 다시 시작하는 거다라고요.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고요. 



Q.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는 말이 참 특별하게 들립니다. 요즘은 백세시대라고들 하잖아요. 곧 팔순을 앞두고 있으신 걸로 알아요. 남은 20년이 그리고 그 이상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으세요? 어떤 모습을 꿈꾸시나요?


A. 사실 이 나이에 실제로 무언가를 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는 고학력자도 아니고요,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거라곤 너무 아프며 죽지 않게 적당히 운동하고, 좋아하는 TV프로그램도 즐기고, 또 맛있는 것도 먹는 거죠. 그런 평범한 일상을 잘 누리는 것이야 말로 제 나이에 원하는 것이랍니다. 그렇지만 정말 20년이라는 세월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그래서 무언가를 새로 해 볼 수 있다면 아내와 여행을 다니고 싶어요. 택시 운전을 하며 이곳저곳을 누볐지만 제대로 여행해 본 곳이 없어요. 즐기면서 살만한 여유도 없었고요. 이제는 천천히 맛과 멋을 즐기며 여행을 다녀보고 싶어요. 또 기회가 된다면 요리를 배워보고 싶습니다. 대식가는 아니지만 미식가라고 자부하거든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아내에게도 딸에게도 또 사랑하는 손자에게도 해주는 날이 있으면 좋겠네요. 그런 꿈을 꿉니다.



Q. 제가 인생을 덜 살긴 했지만, 세상에 늦은 때는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지금이라도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아직 우리에게는 시간이 남아 있고, 또 아직은 건강하니까요. 그럼 마지막으로 100세가 된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를 미리 건네볼까요?


A. 하하 그런 편지는 써보지 않아 어색한데, 인터뷰를 기회 삼아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음....... 방황했던 날들을 청산하고 가정을 꾸리고 예쁜 딸들을 출가시키고 이제는 나의 또 다른 자식인 택시까지 출가시켰구려. 지금 헛헛한 것 같아도 모든 것을 잘 쌓아왔고 그래서 지금 아무 일 없는 평범한 하루를 누리고 있는 걸세.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그럼 언젠가 100세의 내가 해주는 맛난 요리를 먹는 날이 올터이니. 그리고 가족에게 더 표현하게나. 가족일수록 더 살갑고 다정하게 표현하게나. 다정함을 건넬 시간은 유한하다는 걸 꼭 기억해. 




그와 함께 이야기 나눈 시간들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후회와 반성보다는 격려와 사랑이 묻어나는 시간이었다. 백 살이 된 내가 지금의 나에게 건네는 한마디를 내뱉기까지 많이 망설이고 많이 삼키다 떨리는 목소리로 건넨 이야기들은 지금의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인생 뭐 하나 풀리는 거 없는 것 같고, 나만 제대로 해 놓은 것 없는 것 같아도, 이렇게 숨 쉬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퇴사니 은퇴니 복잡미묘하게 생각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곁에 있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유한한 시간을 잘 내어 주는 일이라고.  인생의 특별한 지혜를 미리 알려준 인터뷰이에게 글로나마 고마움을 표한다.





*그냥 좋아서 씁니다 8기

<아빠와 호랑이 버스> 그림책을 보고 아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아빠를 인터뷰하는 글을 써보는 시간입니다. 아빠를 직접 인터뷰하지는 못했고요. 아빠라면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또 이런 말을 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상상의 인터뷰를 했습니다. 나의 마음속에서나마 인터뷰에 응해주신 나의 아버지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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