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리 살빠졌노? 얼굴이 홀쭉해서 영 안 좋다."
시집간 나를 보며 아빠는 늘 그렇게 말씀하신다. 아빠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나는 일 년에 두 번 그러니까 설 추석에만 집에 가는데, 갈 때마다 살이 쪘으면 쪘지 빠진 적은 없다. 결혼 이후 아니 출산 이후 야금야금 몸무게가 불어 이제는 육덕진 몸매가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얼굴은 늘 빠지는 스타일이라 남들이 볼 때는 그다지 살이 찌지 않은 마른 스타일로 보기는 한다. 그러니 아빠 눈에는 나이가 들수록 젖살이 빠져 휑해진 내 얼굴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결혼하더니 살이 빠졌다는 말처럼 들리는지 신랑은 내게, 장인어른의 논리라면 넌 이미 가루가 되어 사라진 후라고 농담 아닌 촌철살인을 하곤 한다.
"우리 OO 이는 손도 예쁘고 발도 예쁘다."
아빠는 나의 얼굴뿐만 아니라 손도 발도 예쁘다고 한다. 내 손을 본 사람 중에 예쁘다고 말한 사람은 우리 아빠가 유일하다고 할까? 뭐든지 잘한다고 칭찬해 주는 엄마도 손이 참 못생겼다고는 한다. 핸드크림이라도 잔뜩 바르라고 현실적인 잔소리를 마구 해준다. 그럼에도 아빠는 내 손이 손가락이 길고 예쁘다고 한다. 더구나 내 신체 중에서 가장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발가락을 보고도 예쁘다고 한다. 내 발가락은 개구리 발처럼 동글동글하면서도 발가락 사이 틈이 많은 형태다. 무좀에 절대 걸리지 않는 생활에는 매우 좋은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샌들을 신으면 개구리가 샌들을 신은 것 같은 모습이 너무 웃겨서 나는 발가락을 가리는 샌들만 주로 신는다. 그런 내 발가락도 아빠 눈에는 다 예뻐 보이나 보다.
"필요한 거 있으면 아빠한테 말해라. 아빠가 해 줄게."
아빠는 엄청난 재력을 가진 부자는 아니지만, 열심히 벌어서 차곡차곡 모아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떳떳이 사는 분이다. 엄마의 부단한 노력으로 함께 이루어진 결과다. 아빠는 시집간 딸이 혹시나 집에서 무언가 필요한 게 있는데 아이들 챙기느라 남편 챙기느라 자신을 챙기지 못할까 봐, 아빠에게 말하라고 하신다. 필요한 게 있으면 해 주겠다고. 물론 아직까지 그런 아빠 찬스를 제대로 써 본 적은 없지만, 아빠의 그런 한마디는 내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준다. 그래서 내가 나 스스로 나를 돌보아야지 하는 생각도 하게 해 준다. 아빠의 넓고 넓은 마음이 나를 이렇게 키웠다.
아빠가 너무 잘해 주는 사람들은 커서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하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한번 도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아빠는 엄마에게는 '여자라면, 엄마라면, 안 사람이라면 OOO 해야 해.'라는 가부장적인 남편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모습을 보며 절대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아빠와 너무 닮은 남편과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음,,, 비밀에 부쳐두기로 하고요, 그렇지만 아빠로서 아빠는 사랑을 많이 주는 아빠였습니다. 물론 지금도요. 작은 딸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관대하고 너그럽고 사랑을 주었거든요. 아빠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기에 지금의 사랑을 줄 줄 아는 제가 있는 거겠죠. 비록 그런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없지만, 아빠는 제게 치킨보다 맥주보다 좋은 존재랍니다.
*그냥 좋아서 씁니다 8기
<아빠와 호랑이버스> 그림책을 보고 아빠에 대한 즐거운 추억을 묘사해 보는 글을 쓰는 날입니다.
아빠의 한마디 한마디가 음성지원이 되어 들려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