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pluie] 왜 쓰는가
아직 모르겠습니다
지난주, 엄마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대부분의 회사 사규상 경조휴가 대상에 증조부와 증조모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마침 3일과 4일이 회사 권장 휴일로 지정되어 회사에 따로 개인 연차를 신청할 필요 없이 엄마와 함께 새마을호 열차를 타고 영동으로 내려갔다.
외할머니의 어머니이자, 나의 증조외할머니, 혹은 왕할머니는 향년 102세셨다. 1935년, 열여섯 살에 영동군 학산면으로 시집와 스무 살에 첫 아이를 낳았다. 서른여덟까지 아이를 낳아 다섯 남매를 키웠다.
히로시마에 버섯구름이 짙게 피어오르고 며칠 되지 않아 한반도에 광복이 찾아온 날, 왕할머니는 이미 이십 대 중반, 아이 둘의 어머니였다. 그렇게 그녀는 제1대 대통령의 취임부터 제19대 대통령의 취임을 보았다. 남편은 예순여덟 해를 함께 살고 먼저 떠났다. 왕할머니는 열여덟 해 동안 과부였다. 그리고 유난히 날씨가 푸른, 오월이 2021년의 문지방을 넘어온 날 생에 매듭을 짓고 가셨다. 첫 아이와 막내 아이는 각각 여든둘, 예순넷에 고아가 되었다.
왕할머니 삶의 하루를 한 페이지라고 한다면, 그녀의 삶은 3만 7천 페이지쯤 된다.
그러나 할머니는 생에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았다.
증조외할아버지에게는 작은마누라가 있었다. 1930대에 축첩은 불법으로 규정되었으나 시골에서는 근대적 법률보다는 관습법이 용인되는 시절이었다. 그 사이에선 아이가 둘 태어났고 호적은 본처 아래로 등록했다. 증조외할아버지 집은 산 꼭대기에 있었고, 산 중턱에는 할아버지가 부리던 사람들이 다섯 가구 살았다. 여자들은 할아버지네 제사나 경조사가 있으면 산 꼭대기 집에 올라와 일손을 도왔다. 증조외할아버지가 환갑잔치를 하던 날, 증조외할아버지는 새 두루마기에 빳빳한 갓을 쓰셨고 집안의 모든 식구는 새 한복을 지어 입었다. 잔칫상이 사흘 내리 마당에 깔려 있어 온 동네 사람들이 적어도 한 번은 들러서 식사를 하고 갔다고 한다. 그 시절 한복과 양장은 야무진 손끝에서 곱게 피어올랐다. 울 스웨터는 뜨거운 주전자를 지나 털실 타래가 되었다가 어머니들의 뜨개바늘을 지나 카디건이 되었다가 조끼가 되었다가 목도리가 되고는 했다.
기록되지 않은 시절은 영동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숨 쉬고, 나는 입과 입을 통해 구전처럼 들어 익혔다. 왕할머니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야기는 나에게 닿지 않은 채 어딘가로 떠났다. 나는 짐작만 할 뿐이다.
기억하던 모든 세대가 떠나가면 그 모든 시절은 갈 곳을 잃고 흩어질 것이다. 백년의 고독에서 아우렐리아노가 멜키아데스의 양피지를 읽자 마꼰도와 그 모든 이야기가 연기처럼 사라진 것처럼.
그렇게 세대가, 역사가 지나가는 거지, 기차에서 엄마는 말했다.
왜 쓰는가.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채 열두 달이 되기 전에 글쓰기에 힘과 방향을 잃었다. 써봄직한 글감은 여기저기 있었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변명을 하자면 세상에 좋은 글이 널리고 널린 데 반해 글을 읽는 사람은 적은데, 초과공급의 세계에서 내가 공급을 굳이 더 늘리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그늘을 짙게 드리웠다. 그늘은 구부러진 모양을 한 꼬리를 질질 끌며 질문을 보여주었다. 질문은 속삭인다.
왜 쓰는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쓰는가? 나는 치열하게 고민을 하고 깊은 생각을 하는 위인은 아니다. 되려 나는 나의 가벼움이 부끄러워하는 편이다. 선악과를 먹은 하와가 여호와의 앞에서 벌거벗은 제 몸에 수치를 느껴 나뭇잎을 모아 치부를 가리던 행위는 내가 책을 읽어 나의 치부를 가리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험에 대한 결핍과 지식에 대한 결핍은 팥쥐의 어미가 콩쥐에게 던져준 밑 빠진 독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콩쥐에게 찾아왔던 두꺼비는 아마 복잡한 서울 골목에서 길을 잃은 나머지 영영 오지 못할 것이다.
질문이 다시 말한다.
왜 쓰는가.
내가 경험한 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 쓰는가? 나의 삶이 타인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내가 사는 삶이 타인에 비해 특수성을 가질 수 있을까. 반면 보편성의 측면에서 이 질문을 대하기에는 세상에 이미 좋은 글이 흘러넘친다. 사실 지금 내 침대에 누워서 꿈뻑꿈뻑 졸고 있는 고양이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해보라고 하면 나는 끝없이 자랑이 반쯤 섞인 이야기를 타이핑해댈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고양이에 대한 콘텐츠를 액체화시킨다면 우리는 모두 노아의 방주를 서둘러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쓰는가. 질문이 언성을 높인다.
어떤 이는 영원히 기억되고 싶어 하고, 어떤 이는 잊힐 권리를 말한다. 언젠가 팟캐스트에서 이동진 평론가는 자신이 죽고 나면 자신이 쓴 글은 모두 폐기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생 자신의 글이 읽혀왔으므로 자신의 생 너머에는 그만 읽혀도 될 것 같다고 했던가.
여덟 살 즈음부터 종종 방에 혼자 앉아 친할머니의 죽음을 상상하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흙 속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숨을 참아보며 죽음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육체의 소멸을 피할 수 없다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영생을 누리고 싶었다. 글을 쓰는 것도 기억되는 방법 중 하나여서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들어, 한 세대가 세상을 지나가며 기억하던 시절을 공기 중으로 떠나보내는 것이, 이미 이야기 포화상태인 이 세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과 영원한 망각을 초월했다기보다는, 지나치게 높은 콘텐츠의 밀도와 양에 피로감을 느껴서인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재치 있는 문장을 만들어내면 찾아오는 희열과 허영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일까. 그렇다기엔 발아하지 못한 이야기 씨앗이 밭에 한가득인데 물이 제 길을 못 찾아 물꼬에 닿지 못하고 있다. 사실 한달글을 통해 픽션과 에세이와 일기 사이를 넘나들며 글을 쓰면서, 한 해의 마지막에는 어떠한 해답이라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왜 쓰는가와 같은 질문은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과 때깔이 유사해서,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덩치가 커지고 무늬가 짙어지는 것 같다.
속살거리던 질문은 이제 쩌렁쩌렁 외친다.
왜 쓰는가.
잘 모르겠다. 글이 미완으로 끝나는 것 같아 아쉽지만, 쓰는 내내 아무리 생각을 뻗어내도 나뭇가지가 하늘에 닿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의 촉수가 허공만 휘적휘적 더듬는 기분이다.
아마 나는 꾸준히 무언갈 써나가며 살아갈 것이다. 느리더라도 말이다. 백이 세까지는 아직 일흔 해가 넘게 남았으니 해답을 못 찾았다는 사실에 일단 절망하지는 말아야겠다. 언젠가는 물이 제 갈 길을 찾아 물꼬를 채우고 씨앗이 싹을 모두 틔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