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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장 Jun 21. 2023

이직 1년 차에 느낀 것

: 이직하는 것이 좋을까

퇴근길이 싱그럽다. 아주 싱그럽다 못해 상쾌하다. 개운한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 매일의 퇴근길이 내게는 프레시하다. 모두의 퇴근길은 신나는게 당연하지만 유독 나의 퇴근길이 그러한 이유는 지리적인 이점이라고도   있겠다. 신논현역에 위치한 우리 회사에서 집으로 가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한데, 강남역을 가로질러 2호선을 타는 루트를 나는 택했다.  편이 환승이 적기 때문이다. 덕분에  눈이 즐겁다. 달포 전부터 공사하던 미국의 유명한 버거집이라는 <파이브가이즈> 공사가  끝난 모양이다.  옆에 자리한 코스메틱 브랜드인 <러쉬> 오늘 보니 리뉴얼 공사를 시작했다. 건너편에 바뀐 팝업 스토어를 보고 철철이 어떤  유행인지 배우기도 한다. 이번엔 켈리라는 맥주가 유행하나 보다. 유통업계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내게 이런 감각적인 동선은  신선하고 재미있다. 싱그러운 퇴근  수밖에 없다.

늘 퇴근길이 싱그러웠던 건 아니었다.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10개월이 조금 넘었다. 그 이전에는 신촌에 자리한 곳이 나의 회사였다. 신촌은 학생들이 많은 상권이지만 유동인구를 현혹하는 화려함은 강남역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나마 신촌에 있던 영업사무소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생산본부가 있는 안산공장과 사무실이 통합되었다. 매장관리를 해야 했던 나의 직무상 안산을 오가기에는 물리적으로 무리가 있었기에 나를 포함한 우리 팀원들은 모두 재택근무를 하였다. 재택과 외근으로 점철된 직무는 외로움의 연속이다. 외로움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삼삼오오 동료들과 모여 점심을 먹는다거나 차 한잔 마시는 재미도 없었다. 문제는 퇴근 시간도 야무지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공간제약이 없는 회사다 보니 업무시간 제약도 없었다. 늘 10시가 훌쩍 넘겨서야 업무 마무리를 했고 그 마저도 빠른 퇴근 시간이었다. 퇴근길의 싱그러움은 당연히 눈곱만큼도 없었음이었다. 그게 벌써 1년 전 이야기 되어가고 있다.

이직 전 회사의 업무 스케쥴


퇴근길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이직 전에도 나름의 재미를 그곳에서 찾았다. 작은 규모의 회사인 만큼 새로운 것을 제약 없이 시도해볼 수 있다는 장점 같은 것들 말이다. 재경본부랄 것도 없는 곳이었기에 허술한 경리팀의 관리하에 관리하는 매장의 점주들에게 시원하게 음료 같은 것도 재량껏 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회사를 다닌 3년 동안 배운 것은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움직이는 것이 다였다. 계속 그 회사에 있었다가는 십 년, 이십 년 후에도 입사하던 그때의 나로 머물 것만 같았다. 팀장은 역시 나를 가르칠 사수는 못되었던 모양인지 늘 새로운 업무를 던지고서는 나와 팀원들에게 방법을 강구하도록 닦달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더 이상 머물지 않았던 이유다. 그 회사의 첫날과 마지막날의 나는 여전히 똑같았다.


이직 한지 일 년 정도 되다 보니 왜 진작 도전 안 했나 싶다. 좀 더 체계적이고 큰 회사를 가고 싶었던 나는 지난 3년간 배우지 못했던 업무스킬을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배웠다. 재택근무라는 고립된 근무환경과 더불어 적은 인원이 여러 업무를 쪼개어하는 이전 회사에서는 방구석 워리어처럼 늘 날 선 관계를 유지했다. 말이 좋아 자립심이지 협업을 하는 방법도 남에게 일을 시키는 방법도 서툴렀다. 이직 초반에는 월권이라는 평가나 왜 네가 그 업무를 하냐는 핀잔을 들었다, 하지만 이직을 한 곳에서는 세밀하게 업무가 나누어지다 보니 적절하게 업무를 분배하고 요청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이것은 나를 지치지 않게 하면서 나의 에너지를 내 업무에 오롯아 쏟아부을 수 있게 해 준다.


내 나이즈음에 이직을 하고 나니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연봉이다. 돈을 좇아 이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중간관리자 위치에 있는 30대가 경력직으로 이직을 할 때는 자연스레 돈이 장점이 된다. <30대, 경력직, 중간관리자>라는 3박자를 지닌 지원자를 회사입장에서는 쉽사리 홀대하기 힘들다. 채용해서 바로 실전에 투입 즉 써먹어야 하기 때문에 충분한 검증을 하는 터라 연봉에서 서운하게 하지 않는 법이다.


더불어 이직을 하면 내가 생각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모두에게 해당되지는 않으나 현재의 위치에서 저평가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꼭 이직을 해보시라. 같은 능력임에도 새로운 곳에서는 나의 가치가 훨씬 더 높게 평가되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이직하기 전 보다 높은 티어의 회사지만 나보다 먼저 그곳에 몸담고 있던 선배들이 생각보다 별거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이직은 꿈을 현실화하는 단계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유통 쪽에 쭉 몸을 담으며 해외영업이나 해외의 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오는 업무를 하는 것이 막연한 꿈이었다. 그게 어떤 일인지, 어떤 직무인지도 모르고 그저 해외 쪽 영업을 하고 싶었다. 오지랖이 넓어 남에게 무언가를 소개해주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일이 해외영업과는 관련 없다. 하지만 내가 담당하는 브랜드가 작년부터 해외에도 왕왕 오픈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회가 코앞에 다가온 것을 실감하고 있다. 아무 연결고리 없다고 생각했던 지금까지의 경력들이 어느새 구슬이 꿰어진 것처럼 내가 꿈꾸던 직무를 향해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직 일 년 차로서 이직을 추천하는 바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평생직장을 최고의 가치로도 둘 수 있다. 하지만 이직은 인생에 주어지는 리셋버튼이다. 전 직장에서의 악명을 끊고 개과천선을 할 수도 있고, 몸 값을 올리는 것으로 인생을 나름 새로이 살 수 도 있는 것이다. 그 대신 무조건 준비 없는 이직은 사절이다. 이직을 위해 꽤나 치밀하게 준비했던 나로서는 내 가치를 인정해 주는 곳과 성장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이직 목표가 확실했다. 그 조건에 맞추어 준비를 해왔기에 희망하던 곳에 입사하여 만족도 높인 것이다. 이직은 사회초년생이 급한 마음에 아무것이나 집어드는 프레타포르테가 아니다. 오뜨꾸튀르처럼 내 몸에, 내 어깨에 착 감기는 직업을 찾는 것이 이직이 되어야 한다. 이직한 지 1년 만에 이미 다 큰 줄 알았던 내가 그 새 또 성장을 했다. 이것이 내가 이직에서 원하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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